구스타보 두다멜의 마지막 LA필하모닉 2025-26 시즌이 시작되었다.
두다멜 음악감독은 9월25일 첫 콘서트를 시작으로 오는 10월14일까지 4개 프로그램(12회 공연)을 소화한 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아시아 3개 도시(서울, 도쿄, 타이베이) 순회연주를 떠난다. 그러고 나면 올해는 더 이상 두다멜 지휘의 음악회가 없고, 내년 2월부터 시즌이 끝나는 6월까지 무려 10개 프로그램(29회 공연)이 포진해있다.
마지막 시즌이어선지 특별한 프로그램들이 화려하게 라인업 돼있고, 그 중에는 피아니스트 임윤찬과의 협연(슈만 콘체르토, 2월12~15일)도 있다. 이에 앞서 임윤찬은 내주 16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독주회로 디즈니 콘서트홀에 데뷔한다.
두다멜의 마지막 시즌에 보내는 LA 음악팬들의 감사와 환호는 뜨겁고 따뜻하다. 슈트라우스의 ‘알프스교향곡’과 엘렌 라이드의 신곡을 연주한 오프닝 프로그램은 물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 ‘불새’를 공연한 두 번째 프로그램까지 7회 공연이 모두 풀하우스였고, 청중은 그가 무대로 걸어나올 때마다, 연주를 마칠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로 끝없는 갈채를 보냈다. 그가 떠난다는 충격과 서운함을 뒤로하고, 그로 인해 지난 17년간 LA가 누렸던 아름답고 위대한 음악의 풍요에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는 갈채였다. 이번 주말(9~12일) 있을 세 번째 프로그램(말러교향곡 2번 ‘부활’) 공연에서도 역시 뜨거운 환호가 이어질 것이다.
한편 두다멜은 LA필에 앞서 뉴욕 필하모닉의 시즌 첫 공연도 개막했다. 뉴욕 필은 LA보다 2주 먼저 2025-26시즌을 시작했는데, 그 오프닝공연을 두다멜이 맡아 이끈 것이다. 그리고 이 무대의 협연자는 (또!) 임윤찬이었고, 그가 연주한 바르톡 피아노 콘체르토 3번에 대해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의 음악비평가 모두가 극찬을 보냈다. 임윤찬은 이제 벌써 최정상의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이 가장 함께 하고 싶어하는 피아니스트가 돼버린 듯하다.
두다멜은 내년 시즌에야 뉴욕 필의 음악 및 예술감독(music and artistic director)으로 부임하지만 현지에서는 사실상 이미 음악감독으로 대접하고 있다. 그가 온다는 뉴스가 발표됐던 2023년 초부터 뉴욕 음악계는 완전 축제분위기이고, 미디어들은 매번 그를 ‘수퍼스타’라고 치켜세우며 목을 빼고 기다려왔다. 정작 두다멜을 세계적인 지휘자로 키워낸 LA에서는 그런 표현을 잘 쓰지 않는데, 어쩐지 좀 유치하게 느껴지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아마도 두 오케스트라 간의 라이벌의식도 작용했을 것이다. 사실 한 20년 전만 해도 LA필은 전혀 경쟁상대가 아니었다. 미국의 문화중심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변방의 오케스트라였을 뿐, 그러나 에사 페카 살로넨(1992~2009)과 데보라 보다 회장(2000~2017), 프랭크 게리의 디즈니홀(2003), 그리고 두다멜(2009-2026)을 거치면서 그 실력과 수준과 위상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올라섰는지는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런 한편 미국 최고 오케스트라의 명성을 유지해온 뉴욕필은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최전성기는 1950~60년대 번스타인 때까지였고, 이후 피에르 불레즈, 주빈 메타, 쿠르트 마주어, 로린 마젤이 바톤을 이어왔으나 금세기 들어 리더십에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상설공연장(데이빗 게픈 홀)의 낙후된 시설과 음향이 오랜 골칫거리였는데, 3년 전 5억달러를 들여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마쳤지만 아직도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은 듯하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두다멜이 LA필에서 뉴욕필로 가는 것은 한 등급 낮춰가는 것이라는 의견을 보일만큼 현재 두 오케스트라의 위상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태에서 영입되는 ‘수퍼스타’ 두다멜에게 ‘제2의 번스타인’이 되어줄 것이란 과도하고 노골적인 기대가 쏟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놀라운 것은 두다멜의 넓은 품이다. 벌써 지금부터 미 동부와 서부 끝의 양대 오케스트라를 함께 이끌고 있는 그는 이 둘을 라이벌이 아니라 한 가족으로 품어 안으려 하고 있다. 이번 LA필 시즌오프닝 콘서트에서 세계 초연한 엘렌 라이드의 신곡(‘Earth Between Oceans’)을 뉴욕 필과 공동위촉한 것도 그 때문으로, 뉴욕에서는 이를 내년 봄 초연하게 된다.
두다멜은 LA필에 부임한 이래 새 시즌의 개막공연에서 반드시 신곡 하나를 세계 초연해왔는데 그 전통 역시 뉴욕 필에서도 이어갈 예정이다. 또 LA에서 청소년 음악교육을 위해 욜라(YOLA)를 창단했듯이 뉴욕에서도 커뮤니티 음악교육단체 설립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두 도시의 조인트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도 있다. 소리와 성격이 많이 다른 두 오케스트라에서의 각기 다른 경험을 통해 두다멜이 어떤 아이디어를 가져올지 기대가 크다. 어쩌면 우리는 그를 잃은 것이 아니라 더 큰 그를 얻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지난 주말 LA필 오케스트라의 얼굴이 반짝 예뻐져 깜짝 놀랐다.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악장(제1 바이올린 수석) 자리에 젊은 한인 여성이 앉은 것이었다. 지난 시즌 은퇴한 마틴 샬리포의 후임인가? 놀라서 알아보니 그녀는 송윤신 휴스턴심포니의 악장이고, 이번 시즌 오픈의 첫 3주와 아시아투어에 ‘게스트’ 악장으로 동행한다고 한다. 악장도 게스트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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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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