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마스 전쟁 후 사망 언론인
▶ 1·2차 세계대전 합친 것보다 많아
▶ 이스라엘, 외신 출입^활동 막고
▶ ‘PRESS’ 조끼 표적 삼아 공격
▶ 현지 기자 ‘테러리스트’로 몰며
▶ 언론 통제 통해 진실 가리려 해

가자 지구에서 한 기자가 죽은 동료의 피 묻은 언론인 방탄조끼를 들고 있다. [로이터]
지난달 1일 자정, 전 세계 뉴스 채널에 ‘검은 화면’이 떴습니다. 일명 ‘블랙아웃(black out)’. 팔레스타인에서 언론인 살해를 중단하라는 의미를 담은 세계 최초의 언론 공동행동이었죠. 국제언론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전 세계 언론사에 불이 꺼지듯 뉴스를 중단하는 공동행동에 동참해 달라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티보 브루탱 RSF 사무총장은 메일에서 “팔레스타인 언론인 희생은 단순히 가자지구에 대한 전쟁이 아니라 저널리즘에 대한 전쟁”이라며 “전 세계 언론사와 기자들의 연대가 필수적”이라고 호소했죠.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미국까지 70여개국, 250여개 언론사가 각사의 플랫폼을 통해 행동에 나섰어요.
쉴틈없이 뉴스를 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뉴스 채널들이 수십 초간 스크린에 공백 이미지를 띄우고, 검은색 지면을 발행하면서 요구한 것은 △팔레스타인 언론인 보호 및 이스라엘 군대의 범죄 처벌 면제의 종식 △ 외신의 가자지구 독립적 접근 허용 △ 전 세계 정부의 가자지구 대피 요청 팔레스타인 언론인 수용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언론인들이 처한 상황이 그만큼 위급하고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자지구 언론 환경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상황입니다. 국제 비영리단체인 기자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이후 지난 8월 11일까지 가자 지구에서 사망한 언론인은 270명에 이릅니다. 매달 10명 넘게 언론인 사망자가 나오는 셈입니다.
서울시 60% 정도 면적의 땅에서 2년 동안 기자 수백 명이 사망했다는 건 전쟁 역사에서도 전례 없는 일입니다. 지난 4월 브라운 대학의 왓슨 국제공공정책연구소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자지구에서 사망한 언론인 수는 제1·2차 세계대전(69명), 한국전쟁(17명), 베트남 전쟁(63명)에서 사망한 언론인 수를 합친 것보다 많은 것으로 드러났어요. ‘뉴스의 묘지: 종군 기자들에게 가해지는 위험이 어떻게 세계를 위협하는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가자 전쟁을 “기자에게 최악의 분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언론의 자유가 훼손되는 수준을 넘어 아예 ‘기자단(press)’ 조끼를 입고 있는 기자들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국경없는 기자회에 따르면 기자들이 업무를 이유로 이스라엘의 직접 표적이 돼 살해됐다고 볼 증거가 확인된 사례는 전쟁 발발 이후 최소 35건에 달합니다.
지난 8월 10일 가자지구 북부의 가자 시티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알자지라 소속 아나스 알샤리프 기자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알샤리프를 포함해 기자 5명과 프리랜서 기자 2명이 머물고 있었던 텐트는 ‘기자단’ 표기가 선명했어요. 이스라엘군은 드론을 이용해 이곳을 표적 공격했고,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영국 BBC 방송은 “이스라엘은 알샤리프가 하마스 테러 세포조직의 수장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그에 대한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고 보도했어요.
알샤리프는 사망 이전부터 이스라엘군의 위협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이스라엘군은 그를 ‘하마스 협력자’로 비난하는 영상을 반복해 내보냈습니다. 사실상 살해 예고인 셈입니다. 알샤리프가 미리 써둔 것으로 보도된 유서에는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이스라엘이 저를 살해하고 제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뜻입니다.” 알자지라의 모하메드 모아와드 편집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알샤리프의 보도를 전 세계 언론이 받아 보도했다”면서 “그는 가자지구에 유일하게 남은 목소리였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제인권단체와 기자단체들의 비난이 잇따랐습니다. 조디 골드버그 CPJ 의장은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신뢰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기자들에게 테러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어요. 그러나 불과 2주 뒤 비극이 되풀이됐습니다.
같은 달 25일 가자지구 남부 나세르 병원 4층이 폭격당하며 언론인 5명을 포함해 21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중에는 가자지구 아동의 영양실조 상황을 보도해 오던 AP통신 소속 마리암 다가 기자가 있었죠.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전쟁 중 단 하루도 취재를 멈추지 않았던” 그는 타국으로 대피시킨 후 1년반 동안 만나지 못한 열세살 아들에게 유언장을 미리 써두었다고 합니다. “네가 자라 결혼하고 딸을 낳게 되면, 내 이름을 따라 ‘마리암’으로 지어주렴. 너는 나의 사랑이고, 나의 심장이며, 나의 영혼이자,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이다.”(마리암 기자의 유언 중)
분쟁 지역에서 기자를 보호하는 국제 규범이 가자 전쟁에서 유독 크게 후퇴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전쟁이 시작된 후 이스라엘 측이 외국 취재진의 출입을 금지했다는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에서 이례적으로 많은 현지인 기자가 사망한 이유이기도 하죠. 언론에 보도되는 모든 영상과 기사는 언론사에 소속됐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가자지구 기자들이 취재한 것입니다.
이는 가자지구의 언론 활동을 통제하기 위한 이스라엘의 전략이라는 게 공론입니다. 가자지구에 외신이 상주해서 독립적으로 취재를 한다면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은 수시로 도마에 오를 것이고, 그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감당하기 힘들테니까요. 동시에 가자지구 기자들에 의해 보도된 영상과 기사들에 대해서는 검증되지 않은 하마스의 주장으로 치부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건 취재하는 기자들이 팔레스타인 출신이기 때문이고요.
이스라엘군은 언론인 표적 공격 의혹에 대해 “군사 목표물과 군사 요원만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항변하면서도 “가자지구에서 테러요원이 언론인을 겸하고 있어 ‘합법적인 군사 표적’이 될수 있다”고 밝혀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외신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이나, 현지 기자들에게 테러리스트 혐의를 씌우는 데 대한 명확한 이유나 근거를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같은 이스라엘의 행태에 대해 브루탱 사무총장은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가짜 뉴스’이자 ‘적’으로 치부하며 공격하는 매우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언론을 살해한 자들이 책임을 지지 않을 때 언론상황은 치명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앞서 RSF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언론인을 상대로 전쟁범죄을 저지르고 있다며 관련 사건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5차례 제소했고,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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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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