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며 역대 최대규모의 의석을 확보했다. 반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지지율은 집권 1년 반만에 역대 총리들 가운데 최저치를 기록했다.
겉으로는 두 이야기 사이에 연관성이 전혀 없는 듯 보인다. 두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은 총선에서 역사적 압승을 거둔 반면 다른 한 명은 정권을 유지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한데 놓고 보면 현 정치상황의 깊숙한 내면이 드러난다.
먼저 영국부터 살펴보자.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와 리시 수낙 등 전 총리들의 재임기는 브렉시트 후폭풍, 도덕적 추문, 재정 위기와 회전문식 총리교체 등으로 얼룩진 격동의 시간이었다. 스타머는 이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제시했다. 노동당 지도자였던 그는 “안정을 유지해가며 기존의 정책을 밀고나갈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진지함, 안정성과 유능함을 구호로 내걸었다. 제도를 재건하고, 능력있는 각료들을 임명하며 영국의 대외 위상을 회복시키겠다는 청사진과 함께 미국의 변덕스런 정치에 침착하고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대내외 주요 정책기조를 밝혔다. 간단히 말해 정치적 드라마나 이념적 불꽃놀이를 배제한 어른스런 지도력을 약속한 셈이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는 자신의 약속을 이행했다. 시장은 안정됐고, 각료정치가 복원됐다. 정책은 진지했고 점진적이었다. 하지만 대중의 지지가 따라오지 않았다. 유권자들의 불만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스타머의 순 지지도는 집권한지 불과 몇 달만에 마이너스 영역 깊숙한 곳에 추락했다.
시험을 거친 준비된 역량을 선보이겠다던 약속도 노동당내 최고 유력 인사이자 스타머의 최측근인 피터 만델슨과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관계가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치명타를 맞았다. 만델슨의 사례로 유권자들은 스타머가 약속했던 정치 복원이란 그들이 퇴짜를 놓은 엘리트들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게 됐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스타머가 사임해야 한다고 말한다. 폴리티코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그의 유임을 원한다는 응답은 34%에 그쳤다.
하지만 영국은 이보다 더 큰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서구 전반에 걸쳐 반이민 정서는 포퓰리즘에 강력한 연료를 제공해왔다. 2023년 3월까지의 1년 동안, 영국은 거의 95만 명에 달하는 이민 순유입을 기록했다. 영국 유권자들이 국경 ‘통제 재장악’을 부분적인 이유로 들어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는 놀랄만큼 높은 수치다. 유권자들의 눈에 코스모폴리탄 성향의 엘리트들은 이민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느낀 배신감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유럽의 장기적인 긴축정책 기조 역시 불만을 키웠다. 2008년의 재정위기 이후, 영국은 유럽의 다른 많은 국가들처럼 재정 긴축을 수용했다. 지출은 억제됐고, 공적 투자는 축소됐으며, 실질임금은 10년 가까이 정체됐다. 1인당 국민총생산(GDP)은 경기침체기에 훨씬 큰 규모의 포괄적 경기부양책을 시행한 미국에 비해 크게 뒤졌다. 그 결과 경기침체가 서서히 악화되면서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이제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자. 다카이치는 신중한 현상유지 대신 적극적인 대결을 택했다. 일본에서 외국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영국에 비해 극히 적은 3%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민문제에 관해 부정적인 어조로 열변을 토했다. 이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을 경우 문화적인 침식과 사회적 긴장이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내놓았다. 중국을 향해서도 이전보다 훨씬 강경한 수사를 구사했고, 수 십년간 유지해왔던 신중한 점진주의적 경제정책에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유권자들은 자민당에게 역대 최대 규모의 중의원 의석을 안겨주는 것으로 다카이치를 응원했다.
다카이치의 매력 중 일부는 상징적이다. 일본은 국제적인 기준으로 볼 때 여전히 가부장적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여성이 정부를 이끄는 것 자체가 대단한 파격이다. 설사 자민당의 조직구조가 변함없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이런 이미지는 변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새로은 것을 갈망하는 시대에 상징성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영국과 일본 사이에는 현실적인 차이가 있다. 일본은 서구에서처럼 정치를 불안정하게 만들 정도의 대규모 이민을 경험한 적이 없다. 유럽식의 긴축정책도 시행하지 않았다. 지난 수 십년 동안 경기침체의 고통이 불안감을 야기시켰지만 그 원인과 결과는 긴축이 유도한 경기침체가 서구인들의 불만에 기름을 부은 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일본의 지속적인 경기부양책은 긴축 경제로 인한 대중의 분노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이같은 구조적 대비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오늘날의 분위기보다는 덜 중요할 수 있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현직 지도자들은 2024년에 치러진 국제적으로 중요한 선거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유권자들은 단호했다. 그들은 정치적인 디테일보다 감정적인 정당성에 관심을 두었다. ‘회복’은 이성에 호소하지만 ‘반란’은 감정에 호소한다. 요즘같은 시기에는 이성보다 감정이 우선한다.
신임 일본 총리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자민당의 장기집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부단한 움직임, 변화와 저항의 분위기를 뿜어낸다. 반면 스타머는 일관성과 기존체제 정비를 대변한다. 지금보다 안정된 시기라면 스타머의 접근법이 대중의 공감을 얻는데 유리하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다.
정치는 주기적으로 순환한다. 파격에 대한 선호 역시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확실히 드러나면 시들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영국과 일본처럼 여러모로 차이가 많은 두 나라에서 감지되는 분위기는 너무도 확연하다. ‘불안의 시대’에 유권자들은 회복이나 복원보다 반란을 선호한다. 올해 중간선거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민주당은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