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명작 ‘오델로’는 사랑의 배신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그린 가정 비극이다. 베니스 공국의 원로인 브라반쇼의 딸 데스데모나는 흑인 장군 오델로를 사랑하여 결혼을 한다.
그러나 오델로의 부관자리를 빼앗긴 부하 이아고의 계략 때문에 오델로는 자기의 부관과 아내가 밀통한 것으로 오해한다. 오델로는 사랑의 배신에 대한 분노를 이기지 못해 아내를 목 졸라 죽이지만 후에 계략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슬픔과 회한으로 자살하고 만다.
이처럼 이성간의 사랑은 미움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과 미움은 감정의 양극이지만 신체적으로는 같은 반응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마치 단 맛과 쓴맛이 극적으로 다르지만 강한 자극이기는 마찬가지인 것과 같다. 그래서 이성관계에서 충격을 받으면 사랑이 미움으로 돌변한다고 볼 수 있다.
새해 벽두에 뉴욕과 LA에서 이성간의 사랑문제로 끔찍한 참변이 발생했다. 뉴욕에서는 가출한 가정주부와 사귀던 남자가 가정으로 다시 돌아간 여자에게 앙심을 품고 여자와 남편, 두 딸 등 일가족 4명을 칼로 난자했다. 남편과 큰딸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으나 부인과 작은딸은 생명을 잃었고 일을 저지른 남자는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LA에서는 바텐더로 일하는 여자친구로부터 절교를 당한 남자가 권총으로 여자친구를 쏘아 죽이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회에서는 이런 사건을 치정사건이라고 한다. 이런 남녀관계가 법적으로 합당한 관계인가 또는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관계인가를 떠나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한다면 그 사랑의 종말을 이런 비극으로 결말내야 한단 말인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모두 인연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현세에 이루어지는 일이 모두 전세의 업이라고 하며 특히 남녀관계는 전세의 인연 때문인 것으로 본다. 그러니 내가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으며 헤어지기 싫다고 헤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주만사가 시작과 끝이 있는 것처럼 사람도 만나면 헤어지게 되어 있다. ‘회자정리’라는 말이다. 그것은 부부간이나 사랑하는 남녀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영원히 변치 말자고 다짐한 사랑도 죽음 앞에서는 갈라지고 만다. 요즘 이혼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고 이혼하는 사람들이 울고불고 하기도 하는데 인연이 다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훨씬 받아들이기 수월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랑의 종말을 어떻게 맞이하는 것이 아름다운 자세일까. 한 쌍의 사랑하는 젊은 남녀가 있다고 하자. 두 사람은 열렬히 사랑하며 결혼까지 약속했으나 한 사람의 변심으로 사랑하는 관계는 깨어지고 말았다. 사랑의 시작이 주는 환희가 큰 것처럼 실연이 주는 아픔도 크기 마련이다.
사랑의 시인 김소월은 그의 시 ‘진달래꽃’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리 밟고 가시옵소서/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아름다운 사랑의 종말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한인사회에서 다시는 끔찍한 사랑의 종말을 보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