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에서 우리에게 가장 잊혀지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월드컵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것이 기억나느냐 물으면 새 대통령 당선이라든지 장마라든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올 것인데, 그 중에서 나에게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타계 소식이다. 내가 코미디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며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흡연 이야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그의 바보스러움은 국민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기회가 되었고 더욱이 그가 무명시절 고생했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었다. 그런 그가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했을 때 한편으로는 실망이 앞섰었으나 ‘국회에서 코미디 많이 배우고 간다’는 말로 다시 평범한 생활로 돌아간 그의 모습에서 동시민의 느낌을 갖었다. 그리고 잠잠하던 그가 월드컵이라는 소식과 같이 우리들의 앞에 나타났다. 이 때는 예전의 항상 웃음만 주던 그런 모습이 아니라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체 깊은 병마와 싸우는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경을 헤매는 이 병마가 그의 흡연에서 시작되었다면서 조금만 일찍 깨달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죽음의 초입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국민들에게 금연을 당부하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 우리 4남매를 키우시며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으면 그렇게 담배를 많이 피우셨을까. 건강에 해로우니 조금만 피우시라고, 금연을 하시는 것이 어떠시냐고 건의를 드렸지만 당신의 기호품인 담배를 멀리하시는 것이 그렇게 힘이 드셨던 모양이다. 그래도 손자를 보신 뒤 베란다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시곤 하셨는데 그 때 당신의 뒷모습이 어찌나 야위어 보이던지 슬금 눈시울이 뜨거웠다. 더구나 환갑을 넘으면서 부쩍 늘어 난 흰머리에 골 깊어 가는 주름이 가슴 깊이 아픔으로 남았다.
그런 부모님을 떠나 타국에서 무심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마냥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듯하던 ‘암’이라는 무시무시한 불청객이 우리 집안에 닥친 것이다. 그렇게 담배를 많이 피우셔도 설마 했는데 ‘폐암선고’는 아버지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너무나 큰 충격 그 자체였다. 더구나 바로 달려갈 수도 없었던 우리에게는 마냥 발만 동동 구르며 어찌할 수 없는 암흑이었다. 정밀검사 결과가 다행이 초기단계여서 수술을 하면 완치가능성이 있다는 의사의 말에 그 동안의 긴장과 초조에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긴 수술의 시간을 지나고 중환자실에 게신 아버지의 의식이 돌아오고 다시 병실로 돌아오신 아버지와 그 어려운 시기에 직접 옆에서 지켜드리지 못한 불효의 아들이 전화통화를 나누며 당신께서 고귀한 생을 새로이 찾았다는 감격에 콧등이 시큼했었다.
요즘은 담배 피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나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많은 고생을 하시면서도 자식들의 앞에서는 어려움을 숨기시고 항상 웃는 얼굴로 보이시던 당신도 결국 이주일씨와 같이 우리 식구들에게는 희망과 기쁨을 주는 코미디언이 아니었을까. 답답하고 어둡던 겨울의 장막을 걷어내고 희망의 새봄이 시작되는 지금, 아직도 자기 인생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찬란한 봄의 소식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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