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도 들어가기 훨씬 전인 작은 여자 아이였을 때, 나는 나의 손안에 꽉 찬 아버지의 두 손가락을 꼭 잡고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한참 후 곧 허물어질 듯한 초가집에 다다랐고 그 안에서 나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기도도 하고 찬송도 불렀다. 예배 후엔 쪄내온 고구마도 먹었다. 지금 생각하니 30대 중반의 젊은 전도사였던 아버지 혼자 갓 시집온 듯한 20대 초반의 어린 색시 한 분만 있던 집을 심방하시기가 부자연스러워 나를 데리고 가셨던 것 같다.
지난 겨울에 두 아들을 데리고 한국의 부모님께 다녀왔다. 아버지께 그 기억을 말씀 드렸더니 아버지도 기억하고 계셨다. 아버지의 서재에 들어섰더니 내 어린 아이였을 때 낯 익었던 솔잎향 섞인 아버지의 냄새가 코 끝을 스치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신을 삼키어 주체하기 어렵노라던 정열적이고 부지런 하셨던 청년 전도사였던 아버지는 이젠 70도 훨씬 넘긴 노인이 되어 계셨다. 아직도 건강을 유지하시며 현역 목회를 하시는 아버지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그 밤을 교회에서 지냈다.
아버지께서 늘 앉아 기도하시는 방석위에 머리를 얹으니 또 그 어릴적부터 맡아왔던 솔잎향의 아버지 냄새. 이 곳이 지구상에서 존재하는 최고의 나의 천국이라고 생각하며 잠에 빠져드는 데 구슬같은 눈물방울들이 뺨위로 사정없이 글러 떨어졌다. 이렇게 잠이 들면 새벽녘 응얼거리는 아버지의 기도소리에 잠이 깰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다음날 이른 새벽에 나의 잠재 속에 오래 존재해온 그 아버지의 응얼거리는 기도소리가 들려왔고, 40이 넘은 내 나이도 잊은 채 나는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 가기 훨씬 전의 작은 여자아이의 상태와 혼돈을 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교회에서 젊은 애기 엄마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 목사님 막내딸이세요? 목사님께서 밤에 산에서 기도하시다가 둥근 달을 바라보면 막내딸 얼굴이 보고싶다던 그…" 차마 그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나는 얼른 서둘러 얼굴을 외면해야만 했다. 팽그르 돈 굵은 눈물 방울이 곧 떨어질 듯 했기 때문이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몇을 고르도록 하고 하나님이 이별도 없고 죽음도 없이 가까이 살도록 한다면…"(그러면 이 세상엔 죽을 사람이 한 명도 없겠지만) 이브는 왜 죄는 지어놓고 인류는 이별과 사랑사이에서 고통을 필연으로 감수하게하는지 새삼 원죄를 애석히 생각해본다. 아버지의, 성기지만 까만 머리가 좋았다. 친정 어머니보고 계속 철저히 아버지의 머리를 염색해 드리라고 당부를 하고 한국을 떠나왔다. 아버지께서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시는게 좋았고,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사실 것 같아서였다.
아버지는 젊음과 정열의 일생을 하나님을 위해 바치셨고 인생의 황혼에 이른 지금은 미련이나 후회함없는 보람으로 꽉찬 당신의 일생이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그 아버지는 당신과 생명이 결탁됐노라고 직접 말씀하신 그 막내딸이 같은 길을 떠나는 것을 축복하실 것이고, 둥근 달을 바라보며 깊은 밤에도 목숨이 다 하실 때까지 그 막내딸을 위하여 기도하실 것이니, 나는 행복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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