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는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가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올 한국 영화계의 최대 수확으로까지 꼽힌다.
이 영화는 1980년대 후반 한국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었던 화성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겠지만 화성연쇄 살인사건은 여고생과 부녀자들만을 골라 잔인하게 죽였던 끔찍했던 사건이다. 10명이 희생됐는데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
다시는 되새기고 싶지 않은 이 사건을 다룬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니 정말 아이러니다. 형사와 범인간의 쫓고 쫓기는 재미있는 수사 스토리가 관객을 끈다고 하지만 그보다 인간의 심리속에 내재해있는 잔인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살인의 추억’
제목만 들어도 섬뜩하다. 고향, 친구 등 그리움에나 어울리는 ‘추억’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에 붙어있다. 관객들은 영화에서 범인이 피해자를 얼마나 참혹하게 죽였는지, 피해자는 얼마나 처참한 모습인지를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볼 것이다. 여성관객이 더 많다고 한다. 이 사건의 대상이 바로 여성이었는데도 그렇다. 처참한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인간심리 때문인가. 바로 인간의 죄성이다.
범인은 범행을 저지른 후 범행장소를 반드시 한번 방문한다고 한다. 범행을 확인하고 싶은 잔인함, 범행을 감추고 싶어하는 사악한 심리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방화의 경우 범인은 대부분 불을 구경하는 사람 중에 있고 끔찍한 사건일수록 주변인물이 일차 용의자로 지목 받는 이유다.
이처럼 인간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잔인함은 끝이 없다.
‘혼자 죽기 싫었다’는 단순한 욕구불만으로 14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 ‘업신여긴다’는 어처구니없는 자괴감으로 역시 수 십 명의 생명을 잃게 했던 나이트 클럽 방화사건, ‘공중전화 통화를 오래한다’고 저지른 폭행 살인 등 모두 황폐한 인간성으로 인한 사건들이다.
LA에서도 지난 일주일사이 4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잇따라 목숨을 잃었다.
지난주 있었던 엄마와 아들, 베이비시터 피살사건은 범인이 누구인지, 범행동기가 무엇인지에 관계없이 두 살배기를 총으로 쏘고 수발의 총격을 가해 처참하게 살해했다는 점에서 무슨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무서움이 엿보인다.
수년전 부인과 처남 가족 4명을 총을 쏴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던 백무본씨, 어머니와 여동생을 사냥용 총으로 살해한 15세 소년 염승철 군, 친구들과 공모해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김대성 군 사건은 어떤가. 염군은 ‘평소 어머니가 미워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해 놀라게 했고 김군은 친구들에게 수 천 달러를 주고 의붓아버지를 청부 살해해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바야흐로 인간 상실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일그러진 이 시대의 흉악한 파편이 날아올지 모른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당시 1년의 절반을 경찰서에서 잠을 자며 취재했다는 친구 K 기자는 영화 ‘살인의 추억’의 소식을 들려주며 “세상이 미쳤는지, 인간이 미쳤는지 모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 시대에 아름다운 사건만을 다루고 싶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인간성 회복운동을 벌여야겠다.
권기준<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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