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만(목사)
기독교의 선교가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는 명제는 역사 자체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바울의 선교의 방향이 동행(東行)하지 않고 서행(西行)함으로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구 기독교 문명이 세계 역사를 주도하게 된 것처럼 기독교 선교가 들어가는 곳마다 세계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기독교의 선교는 세계 역사의 흐름만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니다. 한 국가와 민족의 역사도 바꾸어 놓았다. 가장 모범적인 예는 아일랜드이고 그 당사자는 아일랜드의 선교의 아버지인 성 패트릭(St. Patrick)이다. 패트릭은 5세기 초 그의 나이 44세가 되던 해에 그의 조국 영국을 떠나 아일랜드에 들어와 26년 동안 선교 사역을 했다.
이 기간 동안에 그는 700개의 교회와 수많은 신학교를 세워 1,000여 명의 목회자를 배출하였다. 또한 마을마다 학교를 세워 무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고아원을 세워 약한 자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았다. 노예에게 자유를 허락했을 뿐 아니라 노예 제도를 폐지하여 화해와 치유의 선교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파장과 영향력은 엄청났다. 전 국민의 1/3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우상 숭배와 야만성과 무지함으로 충일했던 바이킹 해적의 섬이 지식과 지혜와 문화와 문명을 아는 우량 민족이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화해와 단결을 모르고 배타적으로 대립되어 왔던 150여 개에 이르는 다문화 종족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는 기적을 가져왔다. 그 결과로 영국을 위시한 유럽의 열강과 어깨를 겨루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 뿐 아니다. 아일랜드는 세계적인 지도자를 수없이 배출하여 인류 역사에 공헌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존 에프 케네디, 레이건, 클린턴, 이들 모두가 아일랜드 출신이다.패트릭이 죽은 지 1550년의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성 패트릭의 이름은 아일랜드의 국민들의 가슴속에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다.
궁금하다. 영국인이었던 패트릭이 어떤 계기로 해서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의 선교사로 들어가게 되었을까. 패트릭은 주후 385년경 영국 동북부 지역에서 켈트족의 후예로 태어났다. 16세가 될 때 까지 그는 지독한 말썽꾸러기요 문제아였다. 그런데 그가 16세가 되던 해에 인생의 큰 위기이자 변화가 다가왔다. 당시 바이킹 야만족이었던 아일랜드 해적이 북 영국을 침략하여 많은 사람과 재물을 노략할 때 소년 패트릭도 그 무리 가운데 섞여 끌려가게 된 것이다.
그는 무려 6년 동안이나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소와 함께 자고 일어나는 고독한 삶을 살았다. 패트릭은 이렇게 거칠고 외로운 들판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사막의 교부 안토니우스와 같은 영성인이 되었다.
어느 날 그의 운명을 바꾸는 일이 일어났다. “원수의 나라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화해와 치유의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패트릭과 아일랜드는 이렇게 해서 인연이 맺어졌다. 악연이 축복이 된 셈이다.
원수의 나라 아일랜드를 용서와 사랑으로 덮고 복음의 씨앗을 뿌렸던 패트릭의 선교정신이 마음에 문득 새롭다. 당신은 리더인가. 패트릭을 본받으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