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영(목사)
6.25사변 후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 ‘서리’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 말은, 훔쳐 먹는 것을 장난삼아 한다는 뜻의 명사이다. 춘궁기 때 한국교회의 안식일도 종래 유대인들의 관행인 변질된 안식일과 거의 다를 바 없어서 의례히 안식일은 안 먹는 날, 안 쉬는 날의 대명사로 인식될 때였다,
한창 사춘기였던 우리는 그 안 먹는 날 아침에 무조건 반항심으로 탈출하여 남의 밀밭을 침입해 ‘밀 서리’를 해먹다가 주인에게 들켜 한나절 동안 꿇어앉아 손들고 벌 받던 공포의 안식일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도 잊은 채 칠득이는 다음주일또 두류산에 놀러가자고 유혹했지만 혼이 난 나는 아예 교회에 가기로 마음먹고 교회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저만치서 피투성이가 된 한 소년이 허겁지겁 달려오며 “근영아! 내 얼굴에 코가 있느냐?”하며 병원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칠득이었다. 그들은 스케줄대로 두류산에 갔다가 6.25때 불발로 떨어진 박격포탄을 주워와 분해하다 폭발하여 내 친구 넷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고 칠득이만 구사일생 살아남은 잊을 수 없는 공포의 안식이었다.
공포의 6.25도 주일 새벽이었던 것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예수께서 예고한 AD70년의 종말론도 결코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하였지만 그날도 유대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공포의 안식일로 각인됐을 것이다. 그때 예루살렘 시민들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않고 다 무너지리라” 한대로 예루살렘, 파멸을 목도하면서 평소 시공 속에만 존재한다고 아집하던 그들의 편협한 신관(神觀)은 성전이 무너짐과 동시에 붕괴되었다. 또 잠자던 이성도 모처럼 각성의 르네상스(부활)를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예수의 사형 죄목도 사실 ‘성전 모독죄’ 플러스 ‘안식일 어긴 죄’였는데 자칭 ‘성전보다 크고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호언장담하던 예수는 무능하게 무덤 속으로 하관되고 말았다. 이 말은 즉, 예수가 시공 속에서 매장됐다고 광고하는 유대인들의 예수폄하의 근거가 된다. 만일 예수가 정말 무덤이란 공간에 지금까지 종속되어 있다면 우리가 굳이 그를 신이라고 숭상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곧 그 무능했던 예수는 더 이상 제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시공을 탈출해 전능한 그리스도로 비약한 것을 설교한 것이 곧 바울이 쓴 갈라디아서이다.
1960년대 그리스도가 용문산에 있다, 계룡산에 있다며 몰려다녔다. 예수는 말세에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는 공간개념에 속지 말라 하였다. 안식일이 토요일이냐, 월요일이냐는 시간개념의 논쟁도 사실 솔로몬 앞에서 내 자식이라 우겨대는 거짓 어미 같고 또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는(눅24:5) 넋 빠진 여인을 보는 것 같다. 그 시간에 그리스도는 도마의 골방과 엠마오의 두 제자에게 비상하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는 가시적 성전을 초월한 안식의 실체를 계시하였다.
같이 길가다 벼락으로 친구 잃은 루터의 “교회밖엔 구원이 없다”는 고백이 한층 친근하게 들리는 이유는 나의 사춘기 때의 우연한 개인구원도 교회란 도피성에서 얻은 ‘값비싼 은혜’ 때문이었다고 설교하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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