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개와 스모그에 휩싸인 파리 시내의 모습. EU의 갖가지 규제 가운데 독성 쥐약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한 규정 탓에 파리는 지금 시민 숫자보다 쥐가 더 많아질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처했다.
“39년 동안 일하면서 이런 상황을 겪어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시(市)의 유해동물 관리 매니저 기예스 데모디스는 에펠탑 주변 샹드마르스 공원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평소 같으면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공원이 임시 폐쇄된 가운데, 대신 들판 중간중간 자리를 점한 쥐떼만이 데모디스를 경악하게 한 것이다. 샹드마르스 공원뿐 아니라 시내 주요 녹지에는 쥐들이 밤낮 없이 등장해 음식을 탐하고, 파리의 유명 쇼핑거리인 마레지구에도 쥐들이 건물을 옮겨 다니며 행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영국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세계적 관광지인 파리가 최근 늘어나는 쥐들로 인해 비상 상황에 돌입했다. 파리 인구보다 쥐의 수가 많을 만큼 개체수가 급증함에 따라 보건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다. 대내외로 시 당국의 적극적인 조치만 기다리고 있으나, 유럽연합(EU)의 규제로 인해 강력한 방역법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당국은 속수무책으로 관광객들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다.
■사람보다 쥐가 많은 ‘빛의 도시’ 파리
현재 파리 시내에는 최소 400만~최대 약 600만 마리의 쥐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3주마다 번식이 가능하고 6~9주면 성체가 되는 성장 속도 상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결과다. 파리 인구가 230만여명인 것을 고려하면 쥐가 주민 수를 넘어선 것은 물론, 주민 1명당 최대 2.6마리의 쥐와 함께 사는 셈이다.
쥐떼가 소리소문 없이 급증하면서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주요 도시, 영국 등 유럽 전역으로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4세기 쥐들이 지중해 인근 국가들에 흑사병을 퍼뜨려 파리에서만 인구 3분의 1인 10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고 분석했다. 현재 파리를 뒤덮은 쥐는 150~200년 전 유럽에 등장한 갈색쥐(학명 라투스 노르베기쿠스)로 흑사병 확산의 원인이 된 곰쥐(학명 라투스 라투스)와는 다른 종이나, 여전히 살모넬라균이나 급성 열성 질환인 렙토스피라증 전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커지는 우려에 시 당국은 비상 태세에 돌입했다. 파리시는 쥐 잡기 운동을 개시하면서 12월 시내 곳곳에 친환경 쥐덫을 설치, 쥐 숫자를 줄이고자 시내 5개 공원을 임시 폐쇄했다. 시 당국은 비둘기나 쥐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캠페인을 전개하는 동시에 쥐들이 쓰레기통을 타고 올라가지 못하게끔 쓰레기통 디자인 개선작업도 진행 중이다.
■쥐떼 출몰, 원인은 EU 규제
그렇다면 파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파리시는 현재 시민과 관광객이 버리는 음식물이 쥐들을 유인하는 최대 요소라는 입장을 관철하고 있다. 쓰레기통 또는 길가에 빵과 과일 등 쥐가 먹을 만한 음식이 넘쳐나니 생존율도 높아지고 쥐덫도 소용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선 유럽연합(EU)의 새로운 규제로 화살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파리 도시동물 과학기술 연구소(UASTI)의 장미쉘 미쇼 박사는 “쥐들이 다니는 지하 길목에 독성 가루를 뿌리던 방식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돼 개체 수 조절에 마비가 걸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방역 수단에 제한이 생기자 주민과 관광객의 발걸음을 끊는다 해도 쥐떼의 규모를 줄이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 보내는 상태다. 시 당국은 이미 11월 한차례 쥐 소탕을 위해 시내 9개 주요 공원을 폐쇄한 적 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생자크탑 광장에서 방역 작업 중인 패트릭 람벵(43)은 “11월 말부터 3주간 약 7m 간격으로 쥐덫을 놓고 있는데 겨우 네 마리를 잡는 데 그쳤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쥐 학살 멈춰라’ 동물권 운동도
한편 일각에서는 쥐잡기 운동에 반대하는 여론도 등장하고 있다. 대중청원 웹사이트 ‘메스오피니언’에서는 지난 10일부터 안 이달고 파리 시장에게 보내는 공개 서신 형식으로 ‘생명보호 차원에서 쥐잡기 운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글을 게재한 조 벤체트리트는 “근거 없는 쥐 공포증”이라며 “언론에서 비춰지는 것과 달리 파리에 있는 쥐들은 건강에 유해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운동은 약 2주간 2만2,000여명의 지지를 받으며 점차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쥐의 완전한 박멸이 아닌 개체 수 조절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쥐 연구로 저명한 독립 활동가 피에르 팔가이락은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파리와 같은 대도시에는 평균적으로 인구 1명당 1.75마리의 쥐와 공생하는 것으로 확인된다”며 “쥐들은 정복하려는 본성이 적고 일생을 20㎡ 내에서만 살기 때문에 (1명당) 2마리 선 아래로만 유지된다면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U의 규제 ‘거미줄’…일상 바꾸는 이색 규칙들
유럽연합(EU)은 독성 쥐약에 대한 규제 외에도 자연 보호, 윤리적 차원에서 거미줄 같이 촘촘한 규제를 시행하기로 유명하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지난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EU를 떠나야 하는 20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영국 국민들의 반감을 사는 EU 규제들을 소개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규제는 진공청소기 관련규제로, EU는 2014년부터 낮은 에너지 효율을 이유로 전력사용량 1,600와트 이상의 진공청소기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2017년 9월부터는 900와트 이상으로 판매 금지 기준이 강화된다. 하지만 유럽 국가의 일부 시민들은 규제로 인해 강력한 청소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데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여기에 전력소모가 큰 백열전구의 생산, 판매를 금지하는 정책이 대표적이며, 냉장고 등 백색가전제품을 유해물질 취급해 폐기 시 특별 절차를 거치게 한 것도 일반 가구에게 불편을 늘렸다. 그 외에도 쓰레기 매립에 높은 벌금 부과, 붉은색 여권 의무화 등의 규제가 영국인들의 조롱 거리로 전락하는 가운데, 텔레그래프는 “EU를 떠나면 영국은 적절한 청소기와 전구를 가질 수 있고, 멍청한 분리수거통을 보지 않아도 되며, 우리의 푸른색 여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EU의 복잡한 규제는 브렉시트 국면에서 포퓰리즘 선전 도구로 활용되면서 문제를 낳기도 했다. 대표적인 브렉시트 지지론자였던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은 국민투표에 앞서 “티백을 재활용할 수 없다거나 8세 이하 어린이는 풍선을 불 수 없다는 EU 규칙들은 터무니 없기 그지 없다”고 주장했으나 모두 실재하는 규제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영국인의 15%가 최소 한 개 이상의 ‘EU에 관한 오해’(Euromyth)를 진실로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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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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