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하성 “기업들 배만 불리는 경제성장 모델 바꿔야”
▶ 상품수출 중심 성장모델 가진 동아시아 국가 희생양 삼을 것
환율조작국 지정 위협 피하려면 ‘對美무역흑자 축소’ 해법 찾아야
한국의 경제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대한 우려가 빠질 수는 없었다. 미국이 1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로 인해 ‘강(强)달러’로 내몰리면 미국의 무역적자는 지금보다 심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트럼프 정부는 상품수출 중심 성장모델을 가진 동아시아 국가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으로 예상됐다. 보호무역주의와 환율전쟁은 트럼프 정부 임기 내내 이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나왔다.
9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열린 ‘2017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한국국제금융학회와 아시아금융학회가 공동주최한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 변화와 한국의 대응방안’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 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재정정책으로 인한 강달러가 되고 이게 무역적자를 가져오니까 그 책임을 동아시아에 돌리는 전략적인 접근이다. (보호무역과 재정 확대가 모순적이라는) 경제학적으로 접근하면 정책적으로 실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환율조작국 지정 문제와 관련,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200억달러 미만으로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은 지속하지 않겠지만 무역정책과 환율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지난 1980년대 미국이 일본에 슈퍼 301조를 적용할 때 한국이 껴들어갔다. 이번에도 (환율조작국 지정으로) 중국을 타깃으로 하면서 한국을 끼워 넣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인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환율조작국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달러 표시 원화 환율이 적정 수준이라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원화 실질실효환율지수를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카드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었다. 왕윤종 SK경영연구소 고문은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3조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은 급격한 위안화 가치 절하를 막기 위한 것”이라며 “지난해 10월 미국 환율보고서도 중국에 호의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황건일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미국 행정부는 올 하반기나 돼야 제대로 꾸려질 것”이라며 “(정책의 목표는) 4월 환율보고서에서 심층분석 대상국을 피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환율조작국 지정과 관련해 “외환시장 개입 여부보다는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미국으로부터 셰일가스 등 에너지 수입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장하성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동학술대회 제1전체회의에서 ‘국민은 어떤 한국 경제를 원하고 있는가?:좌표와 지향점’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솔직히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와 같은 경제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경제성장과 국민소득 간의 괴리가 심화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 1990년부터 1997년까지 누적 경제성장률은 70.7%였고 가계소득의 누적 실질증가율은 63.2% 수준이었던 반면 1997년부터 2015년까지 누적 성장률은 104.4%로 크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계소득은 68.4% 늘어나는 데 그쳤다”며 “결국 가계살림이 나아지지도 않고 일자리도 늘어나지 않는 소득 없는 성장과 고용 없는 성장을 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같은 기간 다른 대부분의 나라도 성장의 과실이 가계에 돌아가지 않았고 불평등이 커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0년부터 2015년까지 경제성장률 대비 가계소득 증가율 비중을 보면 우리나라는 57.9%로 41.7%의 일본보다 높다.
경제 대국 중 하나인 독일 역시 60%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의 체감도는 이들 국가와 차이가 크다는 게 장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일본과 독일은 가계소득이 크게 늘지 못한 중요한 이유가 정부의 복지지출”이라며 “결국 국가가 2차 분배의 역할로 가계의 충격을 줄여주는 반면 우리는 그런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가계소득이 경제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원인으로 장 교수는 경제 시스템의 분배 역할이 고장 났다는 점을 꼽았다. 생산의 주체인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임금을 통해 가계로 돌려주지 않고 쌓아둔 돈을 투자로 집행하지도 않아 추가적인 일자리도 생겨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경제성장과 가계소득, 고용이 함께 가지 못한 이유를 산업구조 측면에서 보면 OECD 국가 중 가장 제조업 비중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제조업의 고용창출 효과가 낮은 것”이라며 “기업이 내부에 유보해놓은 돈으로 충분한 투자에 나섰다면 4~5년의 시차를 가지고 고용이 늘어날 수 있었지만 사실상 제로금리 상황에서도 기업은 투자보다 저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소폭 증가한 반면 총고용에서의 제조업 비중은 대폭 감소했다.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1990년 27.3%에서 2015년 29.5%로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제조업의 고용 비중은 같은 기간 27.2%에서 17.3%로 급락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GDP 중 제조업 비중이 가장 높고 주요20개국(G20) 중에서는 중국(35.9%) 다음으로 높다.
법인세 인상, 소득세 인상을 통해 정부가 재분배 정책을 확대하면 국민이 잘살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장 교수는 “현실적인 한계가 많다”고 판단했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예산 증가율이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지만 여전히 선진국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OECD 평균 수준의 복지예산을 집행하려면 전체 국가 예산의 50%를 써야 한다”며 “재분배 정책을 확대해나가야 하지만 이것만으로 가계소득을 증대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원천적 분배, 본원적 분배를 확대해야 하는데 여기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 될 것”이라며 “결국 전반적인 임금 상승이 필요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노력이 있어야 국민이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경제를 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제발표 후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도 분배를 위한 고민에 대한 고견들이 쏟아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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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조민규·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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