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빈 플랭크 회장.
세계적인 스포츠웨어 브랜드로 급성장
“언더아머의 경쟁상대는 아디다스뿐만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IT의 거물인 삼성, 애플과 경쟁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 직접 진출에 나선 글로벌 스포츠웨어 브랜드 언더아머의 CEO 케빈 플랭크(45) 회장은 지난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서 이같이 말했다.
언더아머를 단순한 스포츠웨어 회사로 한정 짓지 않으려는 플랭크 회장의 사고는 그가 던지는 질문에서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삼성과 애플이 의류와 신발을 만들겠다고 결정한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실제로 만든다면 어떤 걸 내놓을까. 애플과 삼성을 이기려면 답을 찾아야 한다. 누가 됐든 훌륭한 차세대 티셔츠를 만들어내는 회사가 이길 테니까.”
플랭크 회장은 1996년 언더아머를 창업해 북미 지역 스포츠웨어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언더아머는 지난해 3분기까지 26분기 연속 20%가 넘는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나이키, 아디다스에 이어 세계 3위 스포츠 브랜드로 올라섰다. 북미 시장에서는 지난해 3위로 내려서긴 했지만 2015년 아디다스를 꺾고 스포츠웨어 점유율 2위에 오를 만큼 무서운 기세를 보였다. 지난해 전 세계 매출은 전년도보다 22% 늘어난 48억3,000만달러. 플랭크 회장의 자산은 19억달러에 이른다.
언더아머는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는 프론티어 기업 중 하나다. CES에서 언더아머가 선보인 운동화는 내장된 칩으로 착용자의 이동 거리, 속도, 칼로리 소모량 등을 기록하고, 스마트 잠옷은 신체의 변화를 측정하는 한편 온도를 조절해 최적의 수면과 회복을 돕는다. 고객의 니즈에 대응하려면 데이터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플랭크 회장이 내놓은 혁신 상품이다. 언더아머는 지난해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6위에 올랐는데 스포츠 브랜드 중에서는 10위 안에 든 유일한 회사이다.
■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면 길이 보인다’
플랭크 회장은 부동산 사업가인 아버지와 전 켄싱턴시 시장이자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고위 관료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형제들 중 유일한 문제아였다. 1년치 수업료가 4만달러에 이르는 명문 사립학교인 조지타운 고교에서 낙제와 음주난동으로 2년 만에 퇴학당했다. 그가 당시 어머니에게 전화해 “학비 부담이 줄어들게 돼 다행”이라고 말할 만큼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퇴학은 전화위복이 됐다. 모범생인 형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에 맞는 삶을 찾은 것이다. 미식축구 선수로 뛴 경력 덕에 이웃학교에 금세 전학을 갔지만 대학 진학은 쉽지 않았다. 대학 미식축구 1부 리그에 속한 학교 중 어느 곳에서도 영입 제의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전으로 뛸 가능성은 낮지만 ‘워크온(자비로 입학해 다니는 선수)’으로 메릴랜드대에 들어갔다.
경기장에서는 죽을 힘을 다해 뛰었지만 플랭크의 머릿속은 사업 아이디어로 가득했다. 친구들이 데이트를 할 때 밸런타인데이에 꽃을 팔았고 록 밴드 공연에 갈 때 공연장에서 티셔츠를 판매했다. 최고의 사업 아이템은 경기장에 있었다. 미식축구 경기를 한바탕 뛰고 나면 유니폼 안에 입는 면 소재 티셔츠가 땀에 흠뻑 젖곤 했다. 심할 경우 티셔츠 무게만 1㎏이 넘었다. 플랭크는 땀에 젖은 티셔츠가 불편할 뿐 아니라 선수의 기량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했다. ‘땀을 잘 배출하는 티셔츠를 왜 아무도 만들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가 만들어야겠다.’
꽃을 팔아 번 돈으로 다양한 원단을 사서 그는 견본을 제작했다. 결국 여성 속옷에 쓰이는 재질을 사용해 땀에 젖어도 200g밖에 안 되는 티셔츠를 만들었고, 견본을 제작해 팀원들에게 나눠줬다. 동료들의 반응은 ‘대만족’이었다..
대학 졸업 후 플랭크는 1만7,000달러를 들고 할머니 집 지하실에서 친구 킵 퍽스와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 미식축구팀 장비 담당자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라커룸을 돌아다니며 티셔츠 견본을 나눠줬다. 입소문을 내기 위해서였다. 프로 선수가 된 대학 동료들에게도 티셔츠를 여러 장 보내 같은 팀 선수들에게 나눠주게 했다. 전화 세일즈와 주문 정리, 상품 포장ㆍ배송을 단 둘이 하느라 잠은 하루 네댓 시간밖에 잘 수 없었다. 통장 잔고가 바닥나고 빚이 4만달러까지 쌓였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미식축구에서 상대 선수에게 뛰어들 듯 그의 저돌적인 투지는 먹혀 들었다. 조지아공대를 시작으로 대학 팀들에서 주문이 이어졌다. 기존에 입던 브랜드에 익숙해 낯설어 하던 선수들도 언더아머 의류의 뛰어난 땀 배출 기능에 만족해 했고 입소문은 선수들 사이에서 퍼져 나갔다. 바이럴 마케팅의 시작이었다.
1만7,000달러로 시작한 회사는 3년 만인 1999년 100만달러 매출을 돌파했고, 2003년에는 100배 이상 성장해 1억달러를 넘어섰으며 2010년에는 10억달러 고지를 달성했다. 플랭크는 2018년까지 매출을 65억달러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 ‘미래를 결정하는 회사가 이긴다’
플랭크는 창업 초기 최고의 스포츠 의류를 만드는 데만 집중했다. 스포츠웨어의 핵심인 신발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언더아머가 의류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굳어질 무렵인 2006년에야 미식축구화를 만들었다. 2008년 미국을 강타한 불경기에도 굴하지 않았다. 불황에도 사람들은 운동을 하고 옷과 신발을 살 테니 사업을 계속 확장해야 한다고 여겼다. 2008년 트레이닝화를 시작으로 2009년 러닝화, 2010년 농구화를 연이어 내놓았고 창사 이래 한 번도 만들지 않았던 면 소재 의류까지 내놓으며 승승장구했다.

NBA스타 스티븐 커리가 등장한 언더아머 광고.
앞날을 내다보는 언더독(이길 확률이 낮은 약자) 전략도 통했다. 당장은 실력이 부족하고 성적도 뛰어나지 않지만 잠재력이 큰 선수를 광고 모델로 채택했다. 톱스타들을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이미 모델로 쓰고 있기 때문이지만 1등에 도전하는 언더독의 열정과 투지와 맞아 떨어지는 것이기도 했다.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당대 최고 선수들을 모델로 기용할 때 언더아머는 아직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두각을 내지 않았던 야구선수 클레이튼 커쇼와 농구 선수 스티븐 커리를 후원했다. 이들은 언더아머와 계약 후 슈퍼스타가 됐고 언더아머의 매출도 급성장했다. 커리가 NBA MVP로 꼽힌 2015년 언더아머의 신발 매출은전년 대비 무려 57% 늘어나며 이 같은 전략은 대성공을 거뒀다.
플랭크 회장은 “세계에서 최고의 장사꾼은 앞으로 올 것을 예상하는 사람이 아니라 앞으로 올 것을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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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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