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령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연방 센서스국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약 17%를 차지하며, 2030년에는 5명 중 1명꼴로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구 변화의 이면에는 더욱 교묘해진 사기 범죄가 노년층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어두운 현실이 있다.
미국은퇴자협회(AARP)는 최근 FBI 자료를 인용해, 2024년 한 해 동안 60세 이상 연령층이 사기로 인해 약 49억 달러의 재산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대비 43%나 증가한 수치다. 피해자 1인당 평균 손실액은 무려 8만3,000달러에 달하며, 전체 사기 피해액 중 고령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3분의 1에 이른다. FBI는 이마저도 실제 피해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노인을 겨냥한 사기는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으며,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로맨스 사기, 기술 지원 사기, 정부기관 사칭, 투자·암호화폐 사기, 복권·상금 사기, 의료 사기, 가족 사칭 사기, 가짜 자선단체 사기 등이 있다. 외로움, 디지털 기술 미숙, 경제적 불안 등을 노린 접근이 많아 피해자가 쉽게 신뢰하고 속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기는 단순한 금전 손실을 넘어 노년기의 자존감과 존엄을 해치는 범죄로, 가족의 관심과 지속적인 정보 공유가 피해 예방에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층이 사기에 취약한 주요 이유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기술 환경에 대한 익숙함의 차이다.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 암호화폐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사이버 사기나 기술 지원 사기의 쉬운 먹잇감이 된다.
둘째는 사회적 고립이다. 자녀의 독립이나 배우자의 사별로 인해 외로움을 느끼는 노년층은 감정적 연결을 갈망하게 되고, 이를 노린 ‘로맨스 사기’나 ‘신뢰 기반 사기’는 정서적 유대를 이용해 금전적 요구로 이어진다. 피해자들은 종종 수치심에 신고조차 꺼린다.
셋째는 경제적 불안이다. 은퇴 이후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고수익 투자나 ‘확실한 수익’이라는 말에 쉽게 현혹되게 만든다. 특히 암호화폐나 가짜 투자 플랫폼은 고령층의 불안을 교묘히 파고든다.
FBI는 이러한 사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예상치 못한 연락이나 요청에 즉각 반응하지 말고, 반드시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상의할 것을 당부한다. 사기범들은 대개 ‘지금 바로 결정하라’며 압박하는 공통된 수법을 사용한다. 모르는 전화, 메시지, 이메일 링크에는 절대 응답하지 말고, 평소 디지털 보안 습관을 생활화할 것을 권고했다.
자녀 세대의 역할도 중요하다. 부모의 경제 활동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고 대화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낯선 연락을 받았을 때 의심을 품고 가족과 상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평소 자주 소통하고, 새로 등장하는 사기 유형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안부를 묻고 도움을 주는 자세다. 고립되고 외로운 이들에게 가장된 ‘도움의 손길’은 쉽게 믿음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기 피해는 단지 금전적 손실로 끝나지 않는다. 노년기의 자립성과 신뢰, 존엄까지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범죄다. 고령층의 정보 격차를 메워주고, 고립을 막으며, 함께 경각심을 갖는다면 더 많은 노인이 안전한 노후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
한형석 사회부 부장대우>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