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초반의 한 여성은 최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랩탑 열고 자판 두들겨 기록하는 게 아니라 종이로 된 공책을 펴고 한자 한자 직접 쓰는 것이다. 연필이나 펜을 잡고 종이 위에 글을 쓰던 시대로부터 우리는 대단히 멀리 와있다. 손으로 글을 써본 게 언제였던가 싶게 아득하다. 간단한 메모 외에는 거의 쓸 일이 없으니 종이나 펜은 더 이상 일상용품이 아니다.
앞의 여성이 일기를 쓰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알츠하이머 환자인 80대 초반의 어머니를 돌보며 그는 단 5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초긴장의 날을 보내고 있다. 평생 지적이고 강인하던 어머니가 어떻게 저렇게 변했는지,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노인이 과자나 사탕을 몰래 집어 주머니 속에 꽁꽁 숨기고, 목욕 안 하겠다고 떼를 쓸 때면 너덧 살짜리 아이가 따로 없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어머니의 피폐한 모습은 충격이고 아픔이다.
알츠하이머가 뭐길래 한 사람이 수십년 공들여 쌓아온 삶의 탑을 저렇게 무참하게 무너트리는 지 그는 분노했고, 그러던 어느 순간 기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저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훗날 자신도 같은 병에 걸릴 경우 지금 써놓을 걸 읽어보면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이다. 그러니 그날그날의 기록은 일기이자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학술지 ‘자연의학(Nature Medicine)’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미국에서 알츠하이머 환자는 베이비부머들이 연로해지면서 급속도로 늘고 있다. 매년 신규 환자가 지난 2020년 기준 51만 4천명이던 것이 2060년이면 100만명이 될 전망이다. 거의 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태산같이 든든하던 부 혹은 모가 치매로 어린아이처럼 변한 모습은 성인자녀들에게 가슴 찢어지는 비애이다. 하지만 그 경험이 자극이 되어서 예방에 적극 나서는 긍정적 효과도 없지 않다고 ‘알츠하이머 되돌리기’ 라는 책의 저자 헤더 샌디슨 박사는 말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알츠하이머로 고통 받는 모습을 곁에서 본 후 많은 이들이 술을 끊고, 운동을 시작하고, 뇌 건강에 좋은 음식을 챙기는 등 생활습관 변화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개별적 변화들이 사회적 흐름으로 연결된다면 젊어서부터 경각심을 갖고 예방을 생활화하는 건강한 운동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혹은 당신은 치매로부터 안전한가. 치매는 오래 살수록 발병위험이 높은 병, 장수의 복을 타고 났다면 피하기 어렵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래서 남성에 비해 오래 사는 여성이 이 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 통계적으로 여성 중 48%, 상대적으로 기대수명이 짧은 남성은 35%가 치매를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섬뜩한 소식이다.
앞의 여성이 손으로 일기를 쓰는 것은 기록도 기록이지만 병을 예방하려는 대책이기도 하다. 지난해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타이핑 대신 손으로 글을 쓰는 행동은 뇌를 대단히 효과적으로 자극한다. 펜을 잡고 글을 쓰면 뇌파가 후두부 아래 시각피질부터 중간부분의 감각담당 부위를 거쳐 머리 꼭대기 운동피질에 이르는 넓은 부위를 두루 자극하게 되는 데 여기가 바로 학습과 기억력을 관장하는 구역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손과 눈 코디네이션이 필요하니 몸의 섬세한 운동기능과 감각기능을 더 많이 활용하게 되면서 뇌에 훌륭한 자극요소가 된다. 그래서 손으로 일기를 쓰면 치매 발병위험이 절반으로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펜의 힘이다.
뇌는 도전을 받아야 건강하다. 뇌가 나태해지지 않도록 계속 자극을 주는 것,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쉬운 치매 예방책이다. 일단 노트 한권을 마련하자. 하루 10분이나 15분 종이에 글을 쓰면 아련한 추억들도 떠오르고 치매 위험도 줄이니 일석이조, 그야말로 펜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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