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정채봉의 동화 중에 ‘흙탕물과 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세상살이에 회의를 품은 참새가 있었다. 거저 먹이나 찾아다녀야 하는 삶에, 파수를 보아야 하는 삶에 쫓겨다녀야 하는 삶에 참새는 진절머리가 났다. 그것도 날로 혼탁해 가는 세상에서 다른 새들과 곡식 한 톨이라도 더 먹으려고 싸우고, 속고 속이며 살아야 하는 처지가 숨이 막히도록 싫었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인간이 뿌린 농약을 일부러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마침내 이 참새는 스승 참새를 찾았다. “세상살이가 싫어 졌습니다. 너무 치열하고 비참합니다. 오늘도 제 친구 하나는 밭 두렁의 미루나무 위에서 사냥꾼이 허수아비인줄 알고 마음놓고 있다가 그 사람이 쏜 총알을 맞고 죽었습니다”
스승 참새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출가를 했으면 합니다.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불쌍한 우리 참새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한 송이 풀꽃처럼 더러움도 타지 않고 다투지도 말며 의연하게 살고 싶습니다.”
“따라 오너라”
스승 참새는 그를 데리고 그 곳에서 멀지 않은 연못으로 날아갔다. 연못은 위에서 흘러 내려온 흙탕물로 더럽고 검붉었는데, 마침 거기에 뿌리를 내린 연(蓮) 줄기에서는 놀랍게도 꽃봉오리가 화사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스승 참새가 말했다.
“보아라, 연꽃은 저 더러운 흙탕물에서 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더러운 자기 터를 아름다운 꽃밭으로 만든다. 너도 이 험한 세속을 떠나서 꽃을 피우려 하지 말고 여기서 살면서 네 터를 꽃밭으로 만들거라”
한국의 IMF 여파로 지난해 초 무작정 도미, 뉴욕에서 제2의 삶을 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연을 맺게된 한 분을 며칠 전 우연히 만났다.
만나자마자 그 분은 “휴, 힘들어서 못 살겠어요”라며 넋두리부터 풀어놓는다. “왜, 이리 사는 것이 힘드냐”는 그 분 얘기의 골자는 1년 전 첫 만남을 가졌을 때와 똑 같았다.
아무 삶에 대한 계획은 없지만 한국은 먹고살기가 힘들고, 기회 제공은 물론 장래가 보장되지 않고, 교육환경이 나쁘며, 정치하는 X들에게 질렸고 등등 한국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기회의 나라인 미국에 오게됐다고 했었다. 이날은 또 뉴욕은 낯선 곳이지만 한인들도 많고 노력하는 만큼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장사가 너무 안되고, 타인종 종업원을 믿을 수 없으며, 죽기살기로 경쟁하는 한인들이 더 무섭고 등등 한인사회가 한국보다 더 살기가 힘들다고 넋두리를 늘어 놨다. 그리고는 “한국의 IMF 여파로 뉴욕에 무작정 도미한 한인들은 모두 후회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현상은 한인사회에서 반복되며 일어나고 있다.
주식투자로 인한 일확천금을 꿈꾸며 직업전선을 뛰쳐나오는 한인들.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가게를 차리는 것이 훨씬 좋겠다는 생각에 자본과 노하우 축적도 없이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한인들. 한인사회보다는 한국이, 한국보다는 한인사회가 더 나은 것 같다며 이민, 역이민을 반복하며 한 군데 정착하지 못하는 한인들. 몇 년 사이에 직장 을 10여 곳이나 떠돌아다니는 한인들 등등.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막연한 생각으로 현실 탈피를 꾀하고 있거나, 이미 무계획으로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는 한인들은,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에 앞서 더러운 흙탕물에서 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더러운 자기 터를 아름다운 꽃밭으로 만드는 연꽃의 생명력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의 삶에 만족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인자 만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또 다른 도전의 기회가 올 수 있음을 깨달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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