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돌이다”-엉뚱한 말로 글을 시작하는 것은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고려 말 최영 장군의 금언을 되새기기 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면서 추구하는 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태평양 한가운데 캐롤라인 군도에 얩(Yap)이라는 조그마한 섬이 있다. 20세기 초에 그 섬사람들은 돌을 둥글게 다듬어 지름에 따라 ‘페이’(fei)라는 단위의 화폐가치를 정했다. 돌 화폐는 얩섬에서 수백㎞ 떨어진 섬에서 발견되는 석회석으로 만들어졌다.
돈 주인은 그 곳에서 다듬어진 돌을 뗏목으로 운반해 오거나, 무거울 경우 채석장에 그냥 놔두어도 돌 화폐의 가치만큼 부를 행사했다.
한번은 어느 부자가 뗏목으로 거대한 돌 동전을 운반하려다 폭풍을 만났다. 부자는 일꾼들을 살리기 위해 돌을 바다에 빠뜨렸다. 아주 값진 돌 화폐는 바다에 가라앉았지만, 섬사람들은 돌의 구매력을 인정했고, 부자의 재산은 조금도 손상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독일이 이 섬을 점령하면서 추장들에게 도로를 건설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추장은 도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명령을 거부했다. 외부 침략자는 궁리 끝에 채석장의 돌에 검은색으로 십자 표시를 냈다.
즉각 요술과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갑자기 가난해진 주민들은 도로를 놓았다. 그러자 식민 당국은 돌에 표시한 십자 표시를 지웠고, 주민들은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의 저서 ‘화폐의 해악’(Money Mischief)에 나오는 대목이다.
원시인들에게 화폐로 사용된 돌덩어리를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금융시스템에 비교하는 것이 지나친 것일까. 현대의 예를 들어보자.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다이하드 3’에서 테러리스트 사이먼이 월스트릿 지하철역을 폭파하고 금괴를 훔쳐 달아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 장소는 뉴욕 연방준비은행(FED) 지하 창고로, 지금도 그곳에는 엄청난 양의 금이 보관돼 있다. 그 금은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각국 중앙은행이 가장 안전한 곳으로 간주되는 미국에 보관을 의뢰한 것이다.
뉴욕 FED 지하 창고엔 서점에서 책을 분류하듯이 선반에 금괴 보유국의 명칭이 적혀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이 프랑스에 금을 매각할 경우, 지하 창고의 영국 선반에 쌓여 있던 금괴가 프랑스 선반으로 옮겨진다.
금은 그대로 뉴욕 FED 지하 창고에 있는데, 금괴의 위치 이동에 의해 영국 돈은 평가 절하되고, 프랑스 화폐는 절상된다. 얩섬의 부자가 바다 속에 빠트린 돌덩어리와 다를 게 무엇인가.
오늘날의 화폐 경제도 쓸모 없는 돌덩어리에 가치를 매기는 것과 다름없다. 돌이 종이조각으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국가가 인정하는 화폐(법화)나, 기업이 발행하는 증권과 채권도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지금 주머니에 100달러짜리 지폐 5장이 있다고 치자. 조폐창에서 100달러짜리 한 장을 찍는데 45센트가 들기 때문에 5장의 지폐가 갖는 상품가치는 약 2달러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 돈으로 500달러짜리 밍크코트를 살수 있다.
미개사회의 돌덩어리와 뉴욕 FED의 금속, 주머니의 종이조각은 모두 돈이다. 그 돈은 물질적 가치 이상의 허구적 가치를 갖는다. 이 허구가 사회적 신용의 토대 위에 서 있지 않을 경우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무기로 돌변 한다.
지난해 9월 사상 초유의 테러 공격을 당한 후 미국 경제가 강력한 힘으로 회복한 것은 미국인들의 자신감과 애국심 덕분이었고, 달러는 강세를 유지했다. 이에 비해 외국 빚을 갚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르헨티나는 은행 문을 무기한 닫고, 페소화는 종이조각으로 변하고 있다.
돈은 돌덩어리이자, 종이조각이며, 쇳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돈이 가치를 발휘하려면 돌과 쇠보다 강한 사회적 신용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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