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 사람들
▶ 뉴저지 버겐카운티 아트쇼 금상 수상 사진작가 박건준씨
퀸즈 롱아일랜드시티의 퀸즈보로 플라자에 있는 생선가게의 주인 박건준씨(46)는 아침 6시에 가게 문을 연다. 생선 배달을 받아 얼음에 채워 진열하고 생선을 손질해 고객에게 판매하면서 틈틈이 점심시간의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튀김 준비를 한다.
낮 12시가 되면 부인 황연이씨가 가게에 나와 바쁜 일손을 거든다. 오후 1시쯤 박씨는 가게 일을 부인에게 맡기고 사진기를 메고 가게를 나선다. 이 때부터 그는 생선가게 주인이 아니라 사진작가 박준씨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박씨의 생선가게는 생선 비린내가 거의 나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고 사방의 벽에는 흑백으로 촬영한 인물과 누드 등 사진작품들이 걸려 있다. 이 자리에서 생선가게를 한지 올해 10년째, 그리고 사진예술을 한 지 5년인 그의 두 세계를 가게 안에서 한눈으로 볼 수 있다.
박씨는 1982년 영주권자인 부인과 결혼하여 뉴욕에 왔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서 제대했으나 앞날이 막막하던 차에 부인을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 뉴욕에 오자마자 택시 운전을 하기 시작했고 부인은 델리가게와 생선가게의 캐셔 일을 하여 돈을 모았다.
2년이 지난 후 맨하탄의 렉싱턴애비뉴 125가에 자그마한 생선가게를 낼 수 있게 되었다.그런데 1년쯤 지나니 박씨의 끼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음악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는 기타를 좋아했다고 한다. 뉴욕 생활에서 예술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그는 음악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한인 장애인협회를 찾아가 음악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제안, 음악 그룹을 만들어 양로원을 찾아다니며 위문공연을 했다. 처음에 위문공연을 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서 외롭고 무언가 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는데 봉사를 하다 보니 보람이라 할까, 사명감이라 할까, 어떤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음악 봉사를 하면서 사람들과 지나치게 어울리다 보니 가게 일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때마침 중대와 예전 등에서 사진을 공부한 후배들을 만나면서 박씨의 관심은 사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원래 사진을 좋아하여 박물관마다 다니면서 사진전을 빼놓지 않고 보았다.
사진을 하고 싶다는 그의 뜻에 부인도 적극 찬성이었다. 하루 8시간씩 가게일을 계속하면서 2년간 예술사진학원을 다녔고 에이전시를 통해 음악가와 엔터테이너들의 사진 주문을 받아 인물사진을 찍는 사진사로 직업 전환을 했다.
그러다 4년 전부터 박씨의 소재는 인물에서 자연으로 옮겨졌다. 이 변화는 미국의 전설적인 사진작가 안셀 아담스(1902~1984)의 영향이 매우 컸다. 안셀 아담스는 흑백사진의 독보적 대가로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캘리포니아 해안, 서부의 야생 자연을 웅장한 스케일과 섬세한 묘사로 작품화한 유명한 사진작가이다.
항상 그의 사진을 흠모해 온 박씨는 사람을 찍지 않고 자연속으로 들어가기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사진을 재창조(Recreation)라고 한다. 안셀 아담스의 재창조라는 뜻이다.
그가 택한 소재도 아담스가 좋아했던 서부의 야생 자연이다. 그의 작품 소재는 캘리포니아의 데쓰 밸리(죽음의 골짜기)이다. 관목과 선인장이 어우러진 사막 풍경, 물결처럼 부드러운 선이 이어지고 겹쳐지는 모래 능선, 데쓰 밸리지역에 있는 서부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풍물들이 촬영 대상이다.
그는 일년에 10일씩은 가게문을 아예 닫고 아내와 함께 이 지역을 찾
아 세상 일을 잊고 사진에 몰두한다고 한다.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으로 그룹전에 여러번 참가했고 5번의 개인전도 가졌지만 대부분 자선 기부를 위한 전시회를 위해 작품을 냈다.
탈북난민돕기 운동, 아시안 아메리칸 검정고시반, YWCA 성인영어반의 기금을 모금하기 위한 전시회를 가졌는데 어떤 때는 자비를 들여 플레임하여 판매대금을 희사하기도 했다.
이렇게 사진에 열정을 쏟아왔지만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거나 미국에서 알아주는 사진작가는 아니다. 남들처럼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니며 더구나 예술을 전공하지도 못했다. 생계수단으로 여전히 생선가게의 일을 하는 그는 엄밀히 말해서 프로 작가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이제 세인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지난 6월 8일 뉴저지 버겐카운티 아트쇼에서 그는 사진부문의 금상을 받았다. 많은 사진 전문가들이 그의 작품 앞에서 찬탄을 금치 못했다.
데쓰 밸리를 소재로 한 그의 전형적인 작품에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는 사진업을 직업으로 하는 사진사에서 예술사진으로 전환하여 정진하고 있는 사진예술가이다. 그는 뉴욕지역에 한인 사진예술가들이 예술적 공부를 하였으나 상업사진으로 전환하여 사진업을 직업으로 삼는 경우가 많고 특히 흑백 사진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했다.
생선장사와 사진예술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중성 속에서 항상 괴리감을 느낀다는 그는 이민생활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고 자위하기도 했다. 그래도 생활수단이 있어서 사진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면서 고비가 있을 때마다 자신을 격려하고 성원해 주었고 가게일로 생계를 뒷받침 해준 아내에게 고맙다고 했다.
천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성격이라는 그의 인생 목표는 나름대로 뚜렷했다. 좋은 집, 좋은 차가 결코 부럽지 않고 하고 싶은 사진을 계속하면서 남을 돕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바로 그의 꿈이란 것이다.
<이기영 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