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손주 재울 때 다독거리는 자장가로 「나라에는 충성 동이, 부모에겐 효자 동이, 형제 간에 우애 동이, 친구간에 신임 동이, 동네방네 귀염 동이 …」, 그 어느 나라에 이런 서정시 같은 소박한 소원이 있었던가 싶다.
“한국인에게 무엇이 있는가"를 묻는 책에서 홍일식 고려대 총장은「한국인에게는 아직도 “부모에겐 효자 동이"란 효(孝)의 정신이 살아 있다」고 했다.
5월은 마더스 데이(11일) 이외에 우리 축제일로 어린이 날(5일), 어버이 날(8일), 석가 탄생일(8일) 등이 줄줄이 이어지는 달이고, 15일은 ‘스승의 날’, 19일은 ‘성년(成年)의 날’이기도 하다.
이 많은 날들을 자세히 보면 거기에는 “낳아주고, 키워주고, 깨우쳐 주었다"는 양육(養育)과 보은(報恩) 등 인성교육(人性敎育)의 개념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 인성교육은 부모에 대한 효도로부터 시작된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행복한 가정과 건전한 사회와 국가를 만드는데 초석(礎石)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부모 효도하기 운동본부’가 “홀 노인도 고아도 없는 새 나라를 만들자"는 구호를 내걸고 그 실천방안으로 조석문안 드리기, 감사의 마음 전하기(매월 한번), 발 닦아 드리기(1년에 한번), 자녀 없는 부모 방문, 부모 없는 자녀와 홀 노인과의 연결을 내 세웠다.
효도 하기 : 겨울이 다가와 추워지면 개구리도 외로움이 싫어서인지 한데 몰려 볼을 맞대고 겨울 잠(冬眠)에 든다. 이처럼 외로움으로부터 탈피하여 무엇에 의지하고 싶은 노인생리를 “프로깅 현상”(Frogging State·개구리 현상)이라고 한다.
사람의 5욕(慾) 중 노인이 될수록 명예, 돈, 색, 식욕이 약해져 사라지는데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이 서로 의지하는 프로깅 현상이다. 그래서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한끼의 대접보다 “아직도 내가 외롭지 않다"고 하는 의지감이다.
로스앤젤레스 동남쪽 75마일 지점에 노인만이 사는 인구 7천명의 도시 ‘선 시티’(Sun City)에 대한 얘기는 흥미롭다.
여기에는 시청이 있고, 레스토랑, 쇼핑센터, 의료원, 우체국, 주유소, 호텔은 물론 오락실, 목공장, 그림방, 도예실(陶藝室), 양재실(洋裁室), 정원, 농장 등의 첨단 레크리에이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 노인 자치 시에서 발간되는 주간지 선 시티 뉴스에는 1주일 동안 있을 각종 집회와 행사가 예고된다.
명상 교실 - 부인 클럽에서(7:00AM) / 스케치 교실 - 그림방에서(9:00AM) / 미용 체조 - 노스 타운 홀에서(9:30AM) / 오케스트라 교실 - 타운 홀에서(4:00PM) / 남성 합창 - 노스 타운 홀에서(3:00PM) / 요가 교실 - 부인 클럽에서(7:00PM) 등 인력이 비싸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하루 3, 4 시간 일하고 먹고 입고 용돈까지 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수공업의 일거리가 자선단체에서 쇄도한다. 저축까지 하며 살고 있다는 이 자유시가 부럽기만 한 것이다.
이런 큰 규모가 아니더라도 수족을 움직일 수 있는 일터가 있고, 또래끼리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마음의 쉼터가 있으면 선 시티나 다름없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3, 40대 LA 한국 젊은이들이 노인회를 돕고, 밝은 노후를 만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예비노인회’를 조직했다는 얘기를 들은바 있다. 익은 감도 떨어지고 선 감도 익어 떨어지게 마련이지만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부모 모신다’는 전래 동요를 듣는 듯 싶어 흐뭇하다.
효도 받기 : 달력 나이는 70대 이면서 느낌 나이는 30대인 노익장(老益壯)은 서로 대화하고 타협하며 열린 삶을 살아간 때문이다.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 몸은 비록 늙었으나 마음이 젊으면 죽는 날이 쉬는 날이다. 이러한 노인을 우리는 “어르신 아직 정정(亭亭)하십니다"라고 인사를 드린다. 노인정에서 한가롭게 지내고, 대접만 받는 안방 마님 치고 장수하는 노인은 드물다.
노인들의 쉼터인 종로 탑골공원을 찾아가 본 일이 있다. 옆자리에서 무슨 말씀을 하나 엿 들어보았다.
정장을 한 노인 두 분은 「구관이 명관」이라면서 서로 시국 얘기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내가 이래봬도 옛날에는 말야…」「과거를 먹고사는 우린데 무슨 희망이 있겠소. 어서 시간이나 흘렀으면 좋겠는데…」
대부분의 이곳 노인들은 할 일 없이 허송세월을 하면서 시간이 더디 간다고 하소연을 한다.
화풀이로 큰 소리도 들리고 군데군데 빈 소주병도 나 둥글고 있다. 일부의 단면상이겠지만 서글픈 노추(老醜)의 장면이 슬펐다.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노인들이 자신들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준비를 못한 노인들의 장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령자에게는 고령이기 때문에 못하는 일도 많지만 고령자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많다. 도리어 고령자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있을 것이다.
오복(五福)의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은 ‘노년을 뜻있게 보내면서 명을 마친다’는 뜻이다. 배는 해변가에 다 와서 좌초되기 쉽다. 그리고 효도는 하기보다 받기가 더 어렵다는 것도 명심 사항이다.
『아름다운 종말』해피 엔딩(happy ending)을 위해 노인에게 일과 신념은 좋은 궁합이다.
/ikhchang@aol.com
멤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