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과잉
코스코에 다녀온 남편이 비타민 E를 한병 사왔으니 매일 한알씩 먹으라고 한다. 이걸 먹으면 좀 젊어질 거라는 것이다. 이만큼 젊으면 됐지, ‘간 큰 남자’ 계열에 해당되는 발언이었으나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언젠가 누가 ‘무슨 영양제를 먹고 있느냐’고 묻길래 아무 것도 안 먹는다고 했더니 펄쩍 뛰며 야단을 친다. 우리 나이에는 칼슘도 먹어야하고, 각종비타민과 종합영양제도 먹어야 하며, 아스피린도 하루 한알씩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한국에 다녀온 친지가 숯이 몸의 독성과 불순물을 제거해준다고 숯가루 한병을 사다주면서 매일 한 숟갈씩 물과 함께 먹으라 하였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친구가 석류액이 여자에게 좋다며 한병 선물로 주면서 역시 매일 한 숟갈씩 물에 타서 마시라고 하였다. 사과식초가 좋다고 농장에서 직접 사다주면서 매일 한 숟갈씩 먹으라던 친구도 있다.
일전에 아는 안과의사가 눈에 좋다고 하루 한알씩 먹으라며 눈약을 보내주었다. 겨울이 되면서는 감기 예방하라며 물에 타먹는 비타민 C 캔디 한 통을 선물 받은 적도 했다. 그 뿐 아니라 한국서 언니가 왔을 때 함께 코스코에 가서 사온 오스칼 1000정 짜리가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매일 한알씩, 매일 한숟갈씩, 이 많은 건강보조약들을 언제 다 먹어야할 지 나는 참으로 난감하다. 때로는 맘먹고 아침에 한 알씩 먹어보기도 하지만 이삼일 그러다가는 잊어버리거나 슬그머니 귀찮아져 약병은 다시 약장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아침에 먹어야할 것은 또 왜 그리 많은지, 일어나자마자 물 한잔으로 내장청소를 해주라고 하여 물을 한잔 마신다. 또 아침 공복에 과일야채주스가 그만이라고 하여 주서기에 사과, 당근, 오렌지, 셀러리 등을 갈아서 식구마다 한잔씩 마시고 있다.
거기다 모닝 커피 한잔을 피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까지 한잔 마시면 아침나절 물배가 차서 하루 한잔 이상 마시라는 우유는 도저히 마실 수가 없다.
이런 건강보조약 외에도 요즘은 건강을 위한 식품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알로에와 로얄젤리가 유행하던 것은 옛말, 생식은 집집마다 기본이고 무슨 엑기스와 농축효소가 그리도 많은지, 우메켄, 동충하초, 노니주스, 녹용꿀… 요즘은 또 홍삼이 뜬다고 난리다. 이런 건강식품들은 모두 무공해에, 자연식품이며, 하나같이 다 젊어진다 하고, 모두 다 피가 맑아지며, 다들 만병통치약이라고 광고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몸에 좋다는 것이 왜 그렇게 많을까? 우리가 그렇게 영양실조인가? 매일매일 수많은 좋은 것을 먹고도 또 건강보조약과 식품을 찾는 우리는 혹시 영양과잉이 아닌가? 그러고서는 과체중이네, 비만이네 하여 다이어트, 피트니스, 몸짱, 얼짱 하고들 난리다.
한달전 푸드 섹션에 소개했던 건강박사 김정수씨에게 여쭤본 일이 있다.
“아침에 물도 마시고 주스도 마시면 우유는 언제 마셔요?”
“우유, 마시지 마세요”
“넷? 우유는 꼭 마셔야 된다잖아요. 골다공증을 막으려면 칼슘을 섭취하라는데요”
김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영양이 너무 많아서들 탈이에요. 칼슘 아무리 먹어봐야 운동 안 하면 다 헛일입니다. 성인병이란게 모두 너무 잘 먹고 운동이 부족해서 생기는 병이에요”
김씨는 “우리 몸이 비타민 공장이며, 모든 비타민과 영양분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에 고루 다 들어있다”며 약 먹지 말고 비타민도 먹지 말라고 강조했다.
나는 이 분의 말씀이 105% 맞는 것 같다. 좀 아깝지만 약장에 즐비하게 들어선 영양제들, 비타민들, ‘영양실조’ 판정을 받을 때까진 다시 꺼내지 않을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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