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시대’가 열렸다.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며 18년반 동안이나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경제 정책을 이끌어온 앨런 그린스펀(79) 의장이 31일 마지막 회의 주재를 끝으로 퇴임하고 벤 버냉키(52) 백악관 경제정책 자문위원장이 1일 공식 취임한다. ‘사상 최고의 중앙은행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거목 그린스펀의 자리를 이어받는 버냉키 신임 FRB 의장은 어떤 인물인지, 그의 정책 방향과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정통 경제이론가
물가안정 목표제 신봉
재정적자등 난제 산적
■버냉키는 누구
조지아주 어거스타 출생으로 초등학교 6학년때 철자 맞추기(스펠링 비) 주 챔피언을 차지하고 SAT에서 1,600점 만점에 1,590점을 얻은 수재다. 고교때 혼자 미적분학을 공부했던 그는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MIT에서 4년만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문적으로는 대공황 연구에 심취했으며 보스턴 레드삭스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다.
케임브리지, 스탠포드, 프린스턴에서 교수를 지내면서 거시경제와 금융정책 부문에 정통한 엘리트 학자로서 입지를 굳힌 버냉키는 2002년부터 FRB 이사직을 역임한 뒤 지난해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에 발탁됐다 10월 그린스펀 후임으로 지명됐다.
버냉키 의장은 그린스펀 전 의장과 성향이나 행보에 있어 매우 대조적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이 월가 출신의 ‘실물경제통’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한 시장의 지휘자역할을 했다면 버냉키 신임 의장은 엘리트 학자 출신으로 원칙에 충실한 정통 ‘경제 이론가’로 이름이 높다. 그린스펀이 모호하고 어려운 말로 시장을 당혹스럽게 했던 반면 버냉키의 말은 직접적이고 명쾌한 스타일이라는 평가다.
■정책 성향은
이같은 상이점들에도 불구하고 버냉키 체제하에서의 FRB가 급격한 경제정책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경제분석가들의 전망이다. 버냉키 의장도 지난해 차기로 지명된 직후 “그린스펀 시대의 정책과 전략들의 연속성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강한 경제를 위한 인플레 억제가 정책기조의 우선 순위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큰 방향의 연속성은 유지하더라도 버냉키가 FRB를 이끌어 가는 방식은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통화정책 수립에 직관을 중시하고 융통성을 보여온 그린스펀과는 달리 데이터에 의존하는 보다 예측 가능한 정책을 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정 공식에 근거한 ‘물가안정 목표제’(inflation targeting)의 신봉자로 알려진 버냉키가 이같은 방식을 통화 정책 운용에 적극 도입할지도 주목거리다.
■과제
50여년만에 처음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없는 상태에서 FRB의장에 오르지만, 막대한 무역·재정적자와 부동산 시장 냉각, 높은 에너지가격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또 그린스펀 전 의장과 같은 정치력이 검증되지 않은 버냉키 의장이 앞으로행정부와 의회 등 정치권과의 관계에서 FRB의 독립적인 위상을 어떻게 지켜낼지가 주목되고 있다.
<김종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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