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스페인의 중남부 ‘라만차’ 지방으로 올라갑니다. 눈부신 태양아래 굽이진 구릉마다 올리브와 해바라기 밭이 진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듯 빛납니다. 이곳은 돈키호테의 고장이지요.
’콘수에그라’란 마을에 들어서자 멀리 언덕에 하얀 풍차들이 떠있습니다. 뭉게구름 높이 솟은 쪽빛 하늘 속에 풍차들이 마치 흘러가는 돛배들처럼 보입니다. 그 언덕으로 어린아이 같은 돈키호테가 돌진하는 모습을 세르반테스가 웃으며 지켜보았겠지요.
형도 알다시피,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썼던 1600년경부터 백년간을 스페인의 황금시대라 부릅니다. 세비야에서 활약했던 화가 엘 그레코와 벨리스퀘즈도 이 시대의 주역들이었지요. 그 전엔 스페인 카톨릭 왕정이 이슬람을 몰아내기 위한 레콩키스타 운동과 신세계 탐험으로 여념이 없지 않았습니까. 그 후에도 식민지에서 들여온 막강한 부를 신교세력 퇴치와 이슬람 터키와의 전쟁으로 소진하고 말았습니다.
풍차마을의 작은 주막에 들어섭니다. 깡마른 몸에 허술한 투구를 쓰고 창과 방패를 든 채 늙은 말을 탄 돈키호테. 그 옆 노새 위의 뚱뚱한 부하 산초의 동판 조각상을 보니 절로 미소가 납니다. 들판을 뒤덮은 양떼들을 적군 인줄 알고 달려드는 황당함. 여관집 선머슴 같은 딸을 향한 일편단심 구애행각. 앞을 막는 거대한 적(풍차)을 향해 돌진하던 그 우매한 용맹성.
이 소설의 위대함이 풍자와 인간미의 표현에 있음을 실감합니다. 중세 최고의 특권을 누리던 기사계급을 실수 투성이 범부로 대체시켜 놓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말라빠진 당나귀 로시난테와 부하 산초를 향해 변함없는 애정을 보이는 한 순수한 인간에 매료됩니다.
돈키호테와 산초, 이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이상과 현실, 두 모습이라고 누군가 말했지요. 내 속에 고매함을 찾는 속성과 속물적 물질주의에 찌든 양면성을 바라봅니다. 두 인격이 서로 보완, 반응하는 모습을 그려나간 세르반테스의 성격묘사력이 셰익스피어의 그것과 견주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K형, 초리조란 매콤한 소시지와 가즈파초 냉수프로 점심을 먹고 수도 마드리드를 향해 갑니다. 그런데 스페인을 알면 알수록 평화롭고 낭만적인 겉모습과는 달리 피눈물나는 전쟁의 역사가 비참했던 우리 나라의 역사를 연상케 합니다. 스페인만큼 오랜 세월 대립하고, 투쟁하고, 침략 당하고, 치열한 내전을 벌인 나라는 이 지구상에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18-19세기엔 왕권계승 투쟁과 나폴레옹의 강점, 20세기초엔 스페인 내란과 공화정의 개혁실패로 쿠데타가 200여 차례가 일어난 혼란한 역사였습니다. 특히 스페인 내전(1936-1939)은 파시즘과 민주주의, 공산주의 등의 이데올르기 갈등이 빚어낸 동족상잔이었습니다. 근 백만 명이 생명을 잃은 엄청난 희생을 치른 후에야 내란이 끝나지요. 그 결과 프랑코 총통의 군사독재정권이 36년간이나 집권합니다.
형도 알다시피, 이 스페인 내란에 종군한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를 썼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공화 개혁파의 용병으로 프랑코군과 싸웠지요. 누군가 헤밍웨이의 스페인에 대한 열정은 투우에 매료된 후부터라고 했습니다. 그의 뇌리에 박혀 있던 ‘격렬한 죽음’의 이미지가 투우와 꼭 들어맞았기 때문이라지요. 밝음 뒤에 숨은 어둠. 강렬한 태양 빛 안에 내재한 깊은 고독의 그림자를 조명키 위해 그는 죽음을 테마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극히 평범한 인간이 이념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는가를 그는 묻습니다.
벗이여, 한낮인데 멀리서 성당 종소리가 뎅뎅 울립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저 종소리를 헤밍웨이가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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