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론가는 영국이 세계에 준 큰 선물 두 덩이로 영어와 축구를 꼽았다. 어느 시인은 축구를 모르면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일렀다. 어느 열성팬은 월드컵축구가 켜 있는 동안에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고 외쳤다. 2010남아공월드컵이 어느덧 막장이다. 지구촌 32강이 펼치는 64부작 승부드라마는 벌써 62마당을 마쳤다. 남은 것은 독일과 우루과이의 3-4위전(10일)과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결승전(11일) 2마당뿐이다.
한국축구의 원정16강 꿈이 현실이 돼 더욱 신명난 잔치였다. 실력이든 행운이든 한 웅큼만 우리와 함께했다면 8강도, 4강까지도 가능했으리란 생각에, 게다가 이 다음 또 언제 16강전부터의 대진운이 올해처럼 좋으랴 싶은 생각에, 한층 아쉬운 잔치이기도 했다. 성적에 대한 이런 셈 저런 셈 제쳐두고, 남아공월드컵은 끝모를 불황 때문에 냉기가 도는 한인사회에 모처럼 온기를 넘어 열기가 넘치게 했다는 점에서도 특기할 만하다. 뒤적일수록 시큰한 여운이 남는, 그러나 한국이 16강전 깔딱고개를 끝내 못넘어 차마 못꺼낸 게 또 있다. 그 즈음 오로빌 포도원에서 열린 SF한국문학인협회 주최 문학캠프 얘기다.
문학캠프는 SF한문협의 연중 최대행사다. 올해도 작년처럼 서울에서 김종회 한국평론가협회장(경희대 교수)이 날아왔다. 비단 취재가 아니라 소설가 김훈의 말대로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잠시탈출을 위해서라도 유용한 2박3일 쉼표찍기다. 그런데 취재차 떠나려던 날(6월25일, 16강전 전날) 뜻밖에도 취재거부(?)를 당했다. 예년 같으면 기사는 안써도 좋으니 와서 머리를 식히라던 신예선 명예회장이 이번에는 일일이 전화를 걸어 제발 오지 말라고 취재거부를, 아니 신신당부를 했다. 이미 정해진 것이니 문학캠프는 어쩔 수 없지만 기자는 응당 합동응원과 경기소식을 한톨이라도 더 알뜰하게 전해야 한다는 배려였다.
실은 그는 2006독일월드컵 때 비로소 월드컵축구와 ‘황혼결혼’을 했다. 스포츠라면 하는 것도 보는 것도 곁눈조차 주지 않은 채 오직 문학과 음악에 젖어 산 그는 4년 전 이맘 때 여차저차 축구물이 들었고, 그 바람에 누렇게 세월의 때가 낀 원고지 뒷장에다 굵디굵은 몽블랑 만년필로 몇날몇달 밤새워 써놨던 신작소설 ‘심포니를 타는 허밍버드’의 전반부에 축구얘기를 새로 버무리느라 본보 연재개시를 달포가량 늦추기까지 했다.
축구, 특히 월드컵축구는 이렇게 뜻밖의 누군가에 뜻밖의 바람을 일으키곤 한다. 어찌 이 황혼의 작가뿐이랴. 2002년 여름, ‘ㄷ’발음이 설어 “재~한민국”이라 외쳤던 세살바기 C군은 이제 열한살 중학생이 됐다. 어물어물 “재~한민국”은 또렷또렷 “대~한민국”이 됐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녀석의 생각 또한 여물어진 발음만큼 여물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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