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를 마치고 교회 화단에 물을 주고 마당 청소 좀 하고 나니 오늘도 어김없이 두 자매가 나타난다.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배가 아프다며 울고 있는 2학년 아이 배를 쓸어주며 기도해 주고 나니 이번엔 7학년 여학생이 혼자 방에서 울고 있다 한다. 어제 타주의 사촌들이 사고를 당한 아이도 있다. 큰 슬픔에 잠겨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아이를 품에 꼭 안고 함께 기도하니 진정이 좀 되는 것 같다.
식사준비 도와주고, 금요일에 쓸 물놀이기구 빌리고 하다 보니 아이들이 돌아갈 시간이다. 무려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한 아버지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마지막 아이를 데리고 간다. 오늘도 하루를 잘 마쳤다는 안도감으로 몸의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낀다. 방주교실 현장의 모습이다.
160여명의 학생들과 40여명의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부엌에서 수고하는 분들을 포함해 매일 200여명이 그리 넓지 않는 공간에서 하루 종일 북적인다. 자유스럽지만 질서정연하고 짜증내고 싸우는 아이들이 없다. 학생이든 자원봉사자든 모든 사람의 얼굴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열심히 뛰노느라 아이들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고 꾀죄죄하지만 그것이 바로 건강함이다.
사람냄새 가득 나서 좋다. 아이들 잘 먹고 더 먹겠노라고 씩 웃으며 밥그릇 내미는 것도 좋고, 황금 같은 방학을 반납하고 매달리는 아이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놀아주는 자원봉사자들(이들도 사실 고등학생들일 뿐이다)이 대견하다. 매일 아침과 맛있고 영양 듬뿍한 점심, 그리고 오후를 시원하게 해 줄 간식까지 정성껏 준비하면서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는 여러 부엌 봉사자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다섯 번째 맞이하는 방주교실의 첫 두 주간의 풍경이다.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깨우기 어려운 아이들이 오히려 방학에 늦으면 안 된다고 먼저 일어나 서두르는데 도대체 방주교실의 비밀이 무엇이냐며 감탄하고 고마워하는 부모님들에게 마땅히 말해 줄 비결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 가지 있다면 200명 모두를 내 자식처럼 대해 주는 것이다.
그리 크지 않은 교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을 감당하느냐고 하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 사이즈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와 세상이 한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도 서로 상관없이 높은 벽으로 갈라진 채 분리된 두 세계가 되도록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어차피 교회와 세상은 영향을 주든지 받든지 상호작용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힘의 방향은 물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해 흐르게 마련이다.
세상에 빛이 되지 못하는 교회는 세상에 섞여 동화될 수밖에 없다. 이 시대, 신자본주의의 천박함을 번영신학이란 이름으로 포장해도 달라질 건 없다.
예수님은 짠 맛을 잃은 소금은 버려져 사람들의 발에 밟힐 뿐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교회는 세상의 가치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이익을 남기는 곳이 아니라 거룩한 소비를 하는 곳이다. 방학기간 저소득층 자녀들을 돌봐주는 방주교실은 바로 거룩한 소비의 현장이다.
김 동 일 목사 은혜의방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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