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피아노 독주회를 다녀왔다.피아니스트는 라프마니노프와 쇼팡과 멘델스죤을 연주했다.쇼팡의 피아노 협주곡도 달콤하지만 누구보다도 나는 라프마니노프를 좋아한다.오랫만에 듣는 라프마니노프의 선율을 마치 전률하듯 듣고 왔다.그의 열정과 비장함과 엄숙함이 내 전신과 영혼을 마치 두들기는것 같았다.음악 만큼 빨리 영혼에 전달되고 감격과 감동이 전기가 통하듯 온몸을 흐르게 하는것도 또 없을것 같다.
나는 내내 눈을 감고 그 선률을 감상하며 수십년전 옛 기억에 빠져들고 있었다.내가 막 첫 남편과 이혼을 한 그 당시는 가장 내 생애에서 외롭고 슬프고 힘들었던 시절이다.그때 나는 창밖에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보며 늘 이 라파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으며 그 슬프고 감미롭고 비장한 선률에 몸을 떨며 또 위로 받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음악에 빠져 있던 때였다.그 당시 나는 아직 이십대에 불과 했지만 이미 아이 둘을 거느린 엄마였다.
앞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앞이 막막하고 수중에 돈도 없는 가난한 시인에 불과했던 나였다.그 유난히 춥던 겨울,코트 주머니 속에는 버스값인 동전 몇푼이 전 재산이던 때, 하늘을 우럴어 마음 속으로 부르짖으면 밤하늘의 별들만 영롱하고 나는 정말 갈곳도 없는 유랑아 같은 신세였다.
그후 다행히 조금 영어를 말할줄 알았던 덕에 나는 미군부대에 취직이 되었고 먹고 사는 일은 해결이 되었다.인생을 살만큼 살아 오면서 가끔 뒤를 돌아보면 누구나 사람들은 몇번의 시련을 겪게 된다.그 시련이 먼저 오는 사람과 늦게 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그 시련들은 가난으로 찾아오고 병으로 찾아오고 가족간이나 친인척 간에 불화로도 찾아오고 갑작스런 죽음으로도 찾아온다.
얼마후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재혼을 했다.아이 둘을 데리고 총각과 결혼을 했을때 주위 사람들이 모두 놀랬다.한국식의 사고 방식으로 이혼녀가 아이들을 데리고 총각한테 시집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었다.남편은 대학 출신이어서 상당한 인텔리였고 가장 내 마음에 든것은 그가 클라식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는 것이 우리 둘을 연결해 주는 끈이 되었다.
내가 만난 지아이 중에서 라프마니노프와 또스또엡스키와 푸쉬킨 같은 인물들을 아는 사람들은 극히 드믈었다.나와 처음 데이트를 시작했을때 그는 닥터 지바고 책을 사왔다.우리들은 함께 그 영화도 보았다.
생각해 보면 내 남편은 내가 방황하던 때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였던 셈이다.그때 벌써 나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준비하신 새 나라 즉 미국이라는 신천지로 이민을 온것이다.
미국에 정착하면서 나는 방황을 접고 새 땅에 말뚝을 박았다.이곳에 와서 나는 남매를 더 낳았고 네 아이들의 엄마로서 또 한 지아비의 아내로서 열심히 살았다.지금 나는 내 하나뿐인 딸과 막내 아들이 없는 인생을 상상할수 없다.아마 그애들을 낳기 위해 나는 이 땅에 오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큰 애들도 모두 베이 아리아에 잘 살고 있어서 만나고 싶을때 얼마든지 만날수 있어서 생각해 보면 나는 정말 행운아란 생각이 든다.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들 큰 축복을 받았다고들 말해준다.
음악에 정신이 팔리고 잠깐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머리가 까만 사람은 나와 함께 간 친구뿐이다.거의가 머리가 하얀 백인 노인들 중 우리가 유일한 동양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곳 로스모어의 대다수의 인구는 백인이 절대적인 수다.인구 구천명중 아마 팔천명 이상이 백인이고 나머지가 중국인과 이제 막 백명을 돌파한 한국인들과 다른 종족이 몇명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여기 온 한국인들은 정말 멀고도 먼 길을 돌아 이 미국땅,그것도 베이 아리아의 로스모어라는 특별한 단지에 정착한 것이다.행운아들이라면 행운아들이다.비록 마지막 조그만 둥지에 삶을 틀었지만,어디서 공짜 영화와 공짜 클라식 음악을 듣고 아침마다 공짜 운동도 즐긴단 말인가.
또 주위를 돌아보면 아름다운 언덕길과 나무 숲과 꽃들이 만발한 오솔길을 사슴과 칠면조와 코요테와 공생할수 있단 말인가.이곳에서 산다는 것은 삶의 질을 따져볼때 정말 완벽하다고 말할수 있다.
요즘 나는 분초를 다투며 살고 있을 만큼 바빠졌다.나이가 들면서 바쁘다는 것은 좋은 일인것 같다.할일이 없어서 멍하니 무료하게 있는것 보다 바쁘다는 것은 삶의 활기가 있어서 좋다.좋은 친구들과 자주 만나서 맛있는 점심도 먹고 즐거운 대화도 나누고,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딸네도 들려 아이들도 봐주고 하다 보면 책 읽는 시간과 글 쓰기는 뒷전으로 밀려 나기가 십상이다.
내가 거기 있어서 사람들이 즐겁고 또 좋은 영향을 끼칠수 있다면 그것보다 신나는 일은 없을것 같다.내가 살아 있는한 나는 언제나 긍정적이고 밝고 기쁨을 주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오랫만에 좋아하는 클라식 음악을 듣고 나는 한층 더 행복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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