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시리아서 ‘골초’ 경찰국 부국장 참수형 당해... IS 자원입대자 중 금연 못해 자진탈퇴도 잇달아
▶ 점령지 담배가게 모두 폐쇄, 고가에 암거래 성행
IS에 가담했다 탈퇴한 이브라힘 도그리가 튜니시아의 국경마을인 튜니스 인근 맘디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IS의 강력한 금연정책을 피해 튜니시아로 돌아왔다.
■ IS 전사의 철칙 ‘금연’
지난달‘이슬람국가’(IS)의 점령지인 시리아 동부 알-마야딘에서 참수형을 당한 한 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IS 요원들이 공개처형 후 대민경고 차원에서 남겨둔 시신이었다. 사망자의 입에는 담배가 물려 있었고, 곁에 놓인 목 없는 시체에는 “지도자 동지, 그건 안 된다고 경고하지 않았소”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시리아 반군을 지지하는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담배를 물고 있는 잘려진 머리의 주인공은 알-마야딘 경찰국 부국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SOHR은 정통한 현지 내부 소식통을 인용, 그가 골초라는 이유로 참수형을 당했다고 전했다. 경찰국 부국장이면 고위급 관리인데, 줄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공개처형을 당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지만, IS 치하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다. 이슬람 율법과 규례에 위배되는 행위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지도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죽음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IS의 법체계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은 흡연 자체를 금하지 않지만 IS처럼 샤리아 회교 율법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집행하는 극보수 집단은 흡연을 죄악시한다. 이슬람 율법이 가르치는 바에 따르면 인간의 생사는 오직 알라만이 결정할 수 있는 신의 고유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느릿한 자살’행위로 간주되는 흡연은 신의 뜻을 거스르는 불경죄에 해당한다.
알-마야딘에서 한창 잘 나가던 고위관리의 목을 떨어뜨린 정확한 죄목은 흡연이 아니라 알라에 대한 불순종이었던 셈이다.
샤리아를 철저히 신봉하는 IS는 흡연 외에 음주와 욕설, 공개적인 저주 등을 금기시한다. IS 점령지에서 눈치 없이 욕지거리를 입에 달고 다니다가는 태형을 받거나 경우에 따라선 목이 날아갈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줄담배를 피우는 애연가가 IS의 전사가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한국 입양아 출신의 프랑스 국적자인 플라비엔 모로(27)는 지하디스트가 되기 위해 지난해 시리아로 건너가 IS에 합류했으나 흡연 욕구를 누르지 못해 불과 2주 만에 귀국했다.
프랑스로 돌아오자마자 체포돼 7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얼마 전 뉴스전문 방송인 프랑스24와 가진 인터뷰에서 “상부의 지침대로 담배를 끊으려 무지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금연보조 제품인 니코렛 껌을 가지고 갔으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끽연 욕구를 채우지 못해 버둥대던 그는 IS 무장조직에 자원 입대한지 2주 만에 자신에게 지급된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을 지휘관에게 반납하고 귀국했다.
IS의 엄격한 금연정책에 걸려 넘어진 전사들은 플라비엔 모로 한 명에 그치지 않는다.
중동인은 대체로 흡연을 즐긴다. 세계건강기구(WHO)에 따르면 IS의 본거지인 시리아에서는 남녀 성인 인구의 절반이 담배를 피운다. 가정마다 줄담배를 피우는 골초와 물담배 애호가가 한두 명씩 섞여 있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IS는 금연에 관한 한 단호한 입장이다. 시리아 동부 데이르 엘주르 지역의 상당부분을 장악한 IS는 곧바로 ‘해방지역’의 담배가게를 모조리 폐쇄하고 거리 곳곳에 난립한 물담배 카페를 닫아버렸다. 강제 금연을 점령지에서의 첫 사업으로 강력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지역 애연가들은 IS의 금연정책 시행에 끽소리도 못 내고 있다. ‘정복자’의 정책에 토를 달았다가는 목이 잘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연가들에게 금연은 힘겨운 도전이다. 수십 년에 걸쳐 화석처럼 굳어진 흡연 습관을 단번에 잘라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담배를 빼앗긴 점령지 주민들 사이에 흡연 욕구가 켜켜이 쌓이면서 이를 은밀히 충족시켜 줄 암시장이 들어선 것은 어찌 보면 정해진 수순이었다.
암시장에 물건을 대는 공급책 역할은 시리아 반군 장악 지역으로 허가된 물품을 실어 나르는 국내외 장거리 트럭운전사들이 담당한다.
이들은 점령지 바깥지역이나 시리아 접경국인 터키 등지에서 담배를 구입한 후 시리아 반군지역을 경유해 배달에 나선다.
‘위험한 물건’인 만큼 이문은 많이 남지만, 신경 쓸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IS는 단일조직이 아니다. 각 지역의 크고 작은 이슬람 테러 집단을 규합해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조직의 세를 키우고 있다.
따라서 점령 지역마다 성격이 조금씩 다른 무장조직들이 관할권을 행사한다.
현장으로 물건을 반입하는 트럭운전자들은 지역을 관할하는 무장단체의 이념적 경직도를 감안해 대응책을 세운다.
금연정책을 까다롭게 밀어붙이는 시리아 반군 지역을 통과할 때에는 검문소에 도착하기에 앞서 개인이 소지하고 있던 담배를 모두 창밖으로 내던진다.
물론 트럭에 실은 담배를 철저히 숨겨야 한다. 공급책들은 담배를 쌀이나 밀가루 부대 안에 깊숙이 밀어 넣거나 시리아인들이 즐겨 먹는 넓적한 빵 더미들 사이에 쑤셔 넣어 포장을 한다. 차 안에 틀어놓은 대중음악도 꺼이꺼이 늘어지는 이슬람 성가로 바꾸어 놓는다.
최근 이들은 이라크쪽 시리아 접경지인 카임에서 비둘기의 다리에 담배 파우치를 묶어 150여마일 떨어진 목표지점인 라까로 날려 보내는 신종운송법을 개발했다. 이 방법은 검문을 피해 수신인에게 비교적 안전하게 담배를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1회당 공급량에 제한이 따르는 게 문제다.
암시장도 공급과 수요의 법칙이 적용되기는 다를 게 없다. 아무래도 공급이 수요를 크게 밑도는 상황이라 IS 점령지의 담뱃값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여러 종류의 초저가 브랜드가 잔뜩 부풀려진 가격에 암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는 것도 수급 불균형이 불러온 현상이다.
IS가 수도로 선포한 시리아 북부 라까에서 정부 일을 거드는 아부 모하메드(가명)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골로이스 레드’의 가격은 갑당 미화 1달러에 해당하는 50시리아 파운드 정도였지만 지금은 150파운드를 주고도 구입하기 힘들다”고 푸념했다. 심각한 담배 품귀현상으로 가격은 앞으로도 계속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시퍼렇게 날이 선 금연정책은 IS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흡연불가’ 규례는 특히 아랍권 전사를 모집하는데 커다란 장해물이 되고 있다.
니코틴에 길들여진 중동 지역의 이슬람교도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하드(성전)에 참여하기를 원하면서도 강제 금연을 견뎌낼 자신이 없어 자원 입대를 꺼리는 실정이다. 일단 전사대열에 자진 가세한 유럽인들 사이에서도 적지 않은 수가 강제 금연이라는 허들에 걸려 넘어진다.
IS 치하에서 흡연자의 목숨 값은 담뱃값보다 싸고, 애연가 예비전사들의 성전수행 의지는 끽연 욕보다 약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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