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녀 때문에, 커리어 망칠까봐 미뤄왔지만 단 하루라도 ‘내가 원하는 나’로 살고싶어…
▶ 이미 굳어버린 외모 예쁘게 만드는덴 한계
[’실버 트랜스젠더’ 증가세]
지난 가을의 어느 금요일 밤, 한껏 맵시를 부린 50여명의 초청 손님들이 실라-마리 패짓(57)의 아파트로 무리를 지어 모여들었다. 뉴욕시 발레단의 전 남성 무용수인 패짓의 아파트에는 ‘헬스 키친’의 요리사와 웨이터들이 준비한 풍성한 부페식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칵테일파티와 저녁식사가 끝나자 수제 초컬릿 케익이 고급스런 목재 식탁 위에 올려졌다. ‘에로틱 베이커리’에서 만든 케익은 코르셋으로 허리를 바짝 조인 요염한 쇼걸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케익의 형상은 영락없는 여성인데, 그녀의 사타구니 근처에 있어선 안 될 것이 달려 있었다.
방문객들은 이날의 주인공이자 집주인인 패짓의 이름도 달리 불렀다. 일부는 그를 브루스라 했고, 나머지는 실라라 불렀다.
패짓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는 트랜스젠더, 즉 성전환자였다. 이날 모임은 길고도 고통스런 성전환 마무리 절차를 앞두고 그가 마련한 자축파티였다.
패짓은 다음날 아침 일찍 애리조나의 스캇데일로 날아가 ‘완전한 여자’로 거듭나기 위한 마지막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케익을 한 조각씩 받아든 하객들은 식탁 앞에 앉은 패짓에게 다가가 저마다 축하의 말을 건네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뉴욕시 발레단 남성 무용수 시절 당시의 브루스는 늘 냉소적이고 까다로웠던 반면 실라-마리는 부드럽고 쾌활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는 친구들의 평가에 항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성격이 모나고 까다로워 친구들 모두가 두려워하고 멀리했다고 인정했다. 역시 무용단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로리 오글은 “인생의 느지막한 시기에 성전환 수술을 결행한 그녀의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은 지난해 TV 드라마 ‘The Orange is the New Black’에 출연중인 실제 성전환자 래번 콕스가 2014년 6월 ‘타임’지 표지에 등장한 이후 크게 제고됐다.
근래 들어 트랜스젠더의 활동영역은 전방위로 확산됐다. 안드레야 펠릭처럼 남성의 껍질을 벗어던진 성전환 모델들이 뉴욕과 밀라노의 패션무대를 주름잡고 있고 바니스(Barneys)와 같은 거대 소매업체가 남녀 트랜스젠더들을 광고에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젊은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패짓처럼 나이든 성전환자들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 동력원은 아마존이 제작한 TV 시리즈 ‘트랜스페어런트’ (Transparent)였다.
세 명의 자녀를 둔 70대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성전환자임을 밝히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이 드라마는 성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위험한 도박’을 벌이는 현실 세계의 60대와 70대에 용기와 힘을 보태주었다.
사회적 변화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먼저 뿌리를 내리는 경향을 보인다. 성적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 역시 젊은 층을 기반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60대 이상의 나이든 성적소수자들은 젊은이들에 비해 사회적 용인을 받기가 힘들다. 여기엔 본인의 탓도 적지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나이가 들수록 커밍아웃은 점점 어려워진다.
60대 이상 성적소수자들은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굳게 자리 잡은 시대를 온 몸으로 헤쳐 온 사람들이다.
대부분이 기혼자들인 이들은 배우자와 자녀들의 의견을 막무가내로 무지를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배우자와 사별했거나 이별했어도 여전히 아이들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이게 걸림돌이다.
그뿐 아니다. 남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전환한 트랜스젠더들은 그 반대의 경우에 비해 더 많은 물리적 장애요소를 극복해야 한다.
남성의 어깨는 시간을 두고 넓어진다. 때문에 나이가 든 후 성전환 수술을 받으면 여성스런 모습을 가꾸기 힘들어진다.
이런 도전은 자신의 ‘외면적 성’과 이미 어느 정도 화해를 한 50대 이상의 성적소수자 그룹이 감당하기 힘든 후유증이다.
수술을 통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적 변화를 이루었다 해도 50대를 넘긴 나이에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라스트네임을 밝히기 거부한 바바라(63)는 호르몬 치료를 시작할 때 “어차피 20대, 30대 여배우처럼 보이기는 글렀고, 래번 콕스처럼 근사하지도 않을 터인데 성전환 절차를 밟아야 옳은가”라는 회의에 사로잡혔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을 끊어내기는 힘들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내가 원하는 나”로 살고 싶었다고 했다.
성적소수자 지원단체인 ‘세이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바바라는 “거기엔 나 말고도 트랜스가 몇 명 있지만 데이트를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귀띔했다.
성전환 수술을 젊었을 때 하지 못한 사정도 가지가지다. 인터뷰에 응한 트랜스젠더 가운데 일부는 커리어를 망치지 않기 위해 기다리다보니 어느새 60을 넘기게 됐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 혹은 아이들이 둥지를 뜬 후에 홀가분하게 수술을 받고 싶어 기다리다 보니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갔다는 트랜스젠더도 있었다. 성전환 수술을 받는데 들어가는 경비가 만만치 않다는 것 역시 결행시기를 미루게 만드는 주된 요인 중 하나다.
뉴욕시 남성 무용수 출신인 패짓은 브루스에서 실라-마리로 전환하는데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얼마 되지 않는 유산을 몽땅 투입했다.
어렵사리 성기를 ‘교체’했지만 수술 후에도 외형은 크게 바뀌지 않아 몇 차례의 보완수술 절차를 밟아야 했다.
콧구멍을 좁히기 위해 코 성형수술을 받았고, 주름을 당겨 올렸으며 눈과 눈썹 사이를 벌여 놓았다. 윗입술을 들어 올려 코와 입술사이의 간격도 좁혔다. 밋밋한 광대뼈를 높이고 사각턱을 동그랗게 만들기 위해 임플란트를 했고 목젖 제거수술을 받았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은 약 5만3,000달러. 하지만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유방 임플란트와 전기분해를 이용한 체모제거 시술까지 받고 보니 유산으로 물려받았던 10만달러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일단 수술을 받은 후 취업과 보수 면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리어에 거주하는 그레첸 린트너(58)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이동한 후 멀쩡하게 잘 다니던 상업용 부동산회사에서 잘렸다. 남성일 때는 시키지 않던 소소한 잔심부름을 자주 시키던 오너는 어느 날 그녀를 붙잡고 “이제 새로운 장소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사실상 해고통지를 했다.
그러나 리트너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은 실직이나 심각한 구직난이 아니다.
지난 주말 고급 살롱에서 머리를 말아 올리고, 명품으로 온몸을 휘어감은 그녀는 굽 높은 악어가죽 샌들을 신고 자신의 아파트로 들어섰다. 자신은 확실한 여자인데 그곳에 근무하는 도어맨은 그녀를 반기며 이렇게 외쳤다. "헬로, sir!”
<뉴욕타임스 본사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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