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사들 협상 때, 새 노선 취항 때, 자사모델 교환·선물
▶ 받은 측, 절대 처박아 놓는 일 없이 잘 보이는 곳에 장식... 수집 마니아도 다수… 소형모델 전문 제작사 수입도 ‘짭짤’
캘리포니아 풀러턴 소재 ‘퍼시픽 미니어처스’ 공작소에서 폴라 로드리게즈가 여객기 모형에 항공사 표식 도안을 붙이고 있다. 항공사들은 새로운 항로에 취항할 때마다 자사 로고가 붙은 여객기 모형을 관계자들에게 선물한다.
■ ‘품위 있는’ 장식품 각광
미국에서 비즈니스 상담은 악수에서 시작해 악수로 끝난다. 먼저 악수인사를 나누고 통성명을 한 후 밀고 당기는 협상이 시작된다. 얘기가 끝나면 또 다시 손을 맞잡고 흔드는 것으로 만남을 마무리한다. 협상장소가 일본이라면 사정은 약간 다를 수 있다. 일본 기업의 중역들은 머리를 깊숙이 숙이는 배꼽인사로 상대에 대한 경의를 표시한다.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한껏 공손하고 낮은 자세로 상대를 맞아들인다.
그러나 항공사 중역들의 기본 예법은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어디서건 동일하다.
이들은 비행기 모델을 교환하는 것으로 첫 만남의 어색함을 깨뜨린다.
자사 항공기가 새로운 노선에 취항했을 때, 혹은 타 항공사와 계약을 체결했거나 여객기 구입에 필요한 재정지원을 확보했을 때에도 협상 참여자들은 2~3피트 길이의 비행기 모형을 제작해 관계자들에게 전달한다.
정중한 수인사와 함께 주고받은 명함은 단 몇 시간 만에 어두운 책상서랍 안으로 내쳐지기 일쑤다. 반면 항공기 모델은 집이나 사무실의 눈에 잘 띄는 장소에 진열돼 실내 분위기를 살려주는 장식품으로 활용된다.
푸에르토리코 총독 알레한드로 가르시아-빠디야의 사무실에는 제트블루, 루프트한자, 아비앙카 외에 지역 저가 항공사 시이본이 보내준 모형 비행기들이 보기 좋게 전시되어 있다.
2013년 취임한 이래 푸에르토리코에 새로 취항한 항공사들로부터 받은 ‘기념품’이다. 가르시아-빠디야 총독은 “사려 깊은 선물”이라며 흡족해 한다.
금융회사인 CIT 그룹에서 항공기 임대관련 재정업무를 담당하는 제프 니텔은 “모형 비행기는 절대 장롱 속에 처박힐 염려가 없는 선물”이라고 평했다.
미국의 보잉과 함께 세계 비행기 시장을 양분하는 유럽 항공기 제작사 에어버스는 지난해 전 세계 67개 항공사로부터 1,456대의 여객기 제작주문을 따냈다. 여기에 본사 자체 주문물량 3만대가 얹혀 진다. 자체 주문분량은 모두 3피트짜리 에어버스 모형이다.
대당 수억달러를 호가하는 여객기의 구입은 기체의 연료 효율성이라든지, 관리비, 화물 적재량 등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에어버스 북미판매 담당 부사장인 크리스 존스는 데스크탑 항공기 모델이 거래를 위한 흥정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고 밝혔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모델 비행기가 협상 결과를 좌우하지는 않지만 상대방의 흥미와 관심을 끌어 모으는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협상팀은 상담을 마친 후 그들이 가져온 모형 여객기를 그대로 책상 위에 남겨둔다. 상대팀의 최고참에게 주는 의례적 선물이다.
항공사 관계자들이 모형을 교환하거나 선사하는 것은 수십년동안 전해져 내려온 업계의 전통이다.
유나이티드항공 재정 및 구매담당 부사장 개리 래더만은 지난 30년간 상당수의 여객기 모형을 수집했다. 아주 오래 전 100개를 넘긴뒤부터는 아예 세어 보지도 않아 정확히 몇 대를 갖고 있는지 본인도 모른다.
그의 시카고 사무실에 더 이상 모형을 세워둘 공간이 없어 새로 받은 것들은 사무실 앞 복도 창문턱에 줄지어 올려놓았다.
여객기 모형은 항공우주 공학자들에 의해 처음 제작됐다. 물론 장식용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아직 컴퓨터가 없었던 시절, 여객기 디자인과 비행 실험에 모형이 사용된 것이 그 시초였다.
그러던 중 1946년 더글라스 에어크래프트사의 기사 2명이 회사 측의 격려 속에 캘리포니아주 풀러튼에 ‘퍼시픽 미니어처스’라는 업체를 설립한 후 여객기 모형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퍼시픽 미니어처스의 주된 업무는 비행기 탑승을 꺼리는 여행객들에게 항공기의 안전성과 안락함을 홍보하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라 여행객들은 항공여행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공식 명칭보다 팩민으로 더욱 널리 알려진 퍼시픽 미니어처스의 현 소유주 프레드 오웨린은 “회사가 설립된 후 초반에는 생전 여객기를타 본적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비행기 내부 모형을 보여주면서 항공여행이 얼마나 로맨틱하고 호사스러운지를 알리는데 주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소형 모델은 책상이나 서가 위에 올려놓는 고급스런 장식품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요즘은 실제 여객기의 100분의 1 크기에 손으로 직접 페인트칠을 한 모형의 수요가 가장 높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팩민의 ‘주 종목’이다.
오웨린은 “집에 화재가 났을 경우 서재와 거실에 모셔둔 팩민 비행기 모델부터 갖고 나올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들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팩민은 전 세계 4,000여 고객사들의 주문에 따라 모형 여객기를 생산한다. 하지만 대량 주문은 거의 없다. 기껏해야 건당 열대 미만이다.
100대면 큰 건수다.
팩민의 연간 판매량은 총 1만5,000여대. 대당 가격은 모형 크기와 인도기간, 조립 난이도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130달러에서 1,500달러 사이다. 165명의 직원을 거느린 팩민의 연 매출액은 1,000만달러로 제법 쏠쏠하다.
일반인은 팩민에서 직접 모형 여객기를 구입할 수 없다. 그러나 시중에 나온 모델 가운데 상당수가 온라인 장터인 이베이로 흘러들기 때문에 대당 200달러에서 400달러 선에서 원하는 모형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전 항공사 직원인 마크 정은 지난 45년 동안 모형 여객기 구입에 대략 4만5,000달러를 퍼부었다. 소장품의 수는 1,000여개. 이 중 팩민 제품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거의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제미나이의 모델들이다.
현재 위스콘신주 밀워키 공항에서 출입직원들의 신분증 발급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그의사무실에도 여객기 모형 100개가 놓여 있다.
개인적으로 구입한 모델이 아니라 모두 선물로받은 것들이다.
공항안의 식당과 점포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물론 항공사 직원들도 출입증을 발급받기 위해선 반드시 그의 사무실을 거쳐야 한다. 이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늘 ‘갑’의 입장에 서게되는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는 조그만 ‘사은품’들이 꾸준히 들어온다. 비행기 모델도 그 중 하나다.
한 항공사 중역은 그의 사무실에 앉아 출입증 발급을 기다리던 중 전시된 모델들 가운데 자사 로고가 찍힌 모형이 없는 것을 발견하곤 다음날 아침 일찍 한 개를 보내주기도 했다.
마크 정은 공무원 신분이라 이렇게 받은 선물을 개인적으로 챙길 수 없다. 그저 공항을 대신해 보관해 줄 뿐이다.
개중에는 비행기 모델에 빠진 항공사 오너들도 적지 않다. 제트블루의 최고경영자(CEO)인 로빈 헤이스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사무실에 마련한 진열대에 15개 모델을 전시해 두었다. 가까운 서재에도 수십개가 놓여 있다.
그들 가운데에는 판촉원이 선물한 에어버스 A330 모델이 하나 포함되어 있다. 아직 자사에서 도입하지 않은 기종이지만 모델을 들여다 볼때마다 언젠가 꼭 ‘하늘의 궁전’이라는 A330기를 구입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 때까지는 모형에 만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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