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 소녀상 제막 50일… 워싱턴 한인사회와 함께했다
▶ 80여 워싱턴 한인들 ‘소녀상 지킴이’로 나서 매일 수십명 방문 만남의 장소로도 인기
‘워싱턴 평화의 소녀상’이 지난 10월 27일 버지니아 애난데일에 세워진지 50일을 맞았다. 매일 수 십 명이 이 소녀상을 찾고 있는 가운데 미국인들도 심심찮게 찾아온다. 제막 이후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진 소녀상을 걱정하는 한인들이 자발적으로 ‘소녀상 지킴이’를 자처하며 소셜미디어에 단체방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80여 회원들 가운데 누군가는 매일 한 번씩 소녀상을 찾아가 살펴보고 주변도 정리하고 사진도 찍어 올리고 있다. 이처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한인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인해 워싱턴 소녀상은 ‘가장 사랑받는 소녀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워싱턴 소녀상은 다른 지역 소녀상과 달리 공원이 아닌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맨발에 움켜쥔 두 손, 다부진 얼굴로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단발머리 소녀는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한인들은 대부분 소녀상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타인종 사람들은 바닥에 새겨진 안내문을 읽어보고도 고개를 가로 젓는다. ‘어떻게 이렇게 어린 소녀가 일본군 성노예가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1. “상처가 깊을수록 자주 이야기하며 기억해야”
제막식 다음날 신문을 보고 소녀상을 찾아왔다는 린 헤인지 씨는 “일본에서 살고 있는 아들이 찾아와 함께 소녀상을 보러 왔다”며 “상처가 깊을수록 자주 이야기해야 힐링이 되는 만큼 동상을 세워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번은 라티노 청년 2명이 소녀상 앞으로 걸어오더니 마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듯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서 있다가 가져온 바나나를 하나씩 떼어 가지런히 소녀상 앞에 놓고는 말없이 떠나기도 했다. 한동안 소녀상 앞에는 바나나 5개와 사과 3개가 놓여있었다.
2. “시리아에서는 여전히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떨리는 손으로 소녀상을 만지며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도 있었다. 시리아에서 온 한 청년은 자신이 쿠르드족이라고 밝히며 얼마 전 시리아에 남아있던 사촌들이 모두 죽었다고 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야 했다”며 “전쟁의 비극은 과거의 역사가 아닌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분개했다.
3.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위해 기도”
성공회워싱턴교회(주임사제 최상석)는 성도들과 함께 소녀상 앞에서 기도회를 가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아직도 여전히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촉구했다. 최상석 신부는 “건립뿐만 아니라 앞으로 꾸준히 소녀상을 지키고 보살피는 일에도 우리의 정성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4. “소녀상 앞에서 만나자”
소녀상은 이제 한인사회 만남의 장소이자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다.
‘어디서 만날까? 일단 소녀상 앞에서 보자’ 등 일부러 약속을 잡기도 하지만 무심코 들렀다 반가운 이를 만나 정담을 나누기도 한다. 한 동네에 살면서도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지인들을 소녀상 앞에서 자연스레 만나는 일이 다반사다. 소녀상 덕분에 애난데일 한인사회가 화기애애하다. 모처럼 가족끼리 애난데일에 외식하러 나오는 길에 들리기도 하고 타지에서 찾아온 이들과 함께 소녀상을 방문하기도 한다.
애난데일 주민인 김희상씨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소녀상을 방문해 먼지도 털고 얼룩도 닦아내는 가장 성실한 ‘소녀상 지킴이’다. “한인사회에 늦둥이가 생긴 것 같다”는 김희상씨는 “소녀상이 세워지기까지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 미안한 마음”이라며 “그 동안 정성을 다한 분들에게 보답하는 의미로 그저 오가는 길에 들리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녀상 지킴이’ 신행우씨도 그간 궂은일을 마다않고 도맡아 온 가운데 자신의 생일날 아침에도 소녀상을 찾아 주변을 정리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목도리를 둘러주고 비가 오면 우산을 씌워주는 등 한인들의 ‘소녀상 사랑’이 남다르다.
5. “기억공간도 방문해 주세요”
소녀상이 자리한 한국일보 옆 건물 1층에는 ‘소녀상 기억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소녀상 관련 전시를 비롯해 한글/영문 자료도 비치되어 있고 기념품도 구입할 수 있다. 소녀상 지킴이들의 회의장소로도 사용되고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한다. 워싱턴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 이정실 회장은 “소녀상을 기억하는 장소이자 한인들의 남다른 애정을 확인하는 장소”라며 “건립 이후에도 손 편지와 함께 후원금을 보내는 등 한인들의 관심과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녀상 앞에서 만난 누군가에게 설명이 필요하다면 옆 건물 1층 히즈디자인 사무실에 마련되어 있는 기억공간 방문을 추천한다. 전시도 보고 필요한 자료도 얻을 수 있다.
“소녀상의 첫 겨울나기”
어느덧 계절이 바뀌어 워싱턴 소녀상의 첫 겨울나기가 시작됐다.
‘첫눈이 내리면 소녀상 앞에서 만나자’는 한인들도 있고 15일에는 건립 50일을 기념해 소녀상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장식했다. 오는 21일(토) 오후 5시에는 소녀상 앞에서 캐롤을 부르는 작은 음악회도 열릴 예정이다.
워싱턴 희망나비 조현숙 대표는 “내년에는 워싱턴 DC에 ‘워싱턴 소녀상’을 세우기 위해 추진하고 있다”며 “모처럼 한인들 모두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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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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