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우리 집으로 데려온 후 매일 산책한다. 강아지가 크면서 산책량도 늘어서 요즘은 3마일 정도를 아침저녁으로 두 번, 그러니까 하루 6마일 걷는 날이 많다. 강아지와 산책을 매일 하다 보니 어느 정도는 루틴이 정해졌다. 주택가를 걸어서 공원에 갔다 오는 루틴이다. 가능하면 일주일 주기로 매일 다른 루틴을 걷는다.
이제 갓 8개월이 된 강아지는 아직도 걸음걸이마다 스프링이 달린 것처럼 사뿐사뿐하다. 아마 내 걸음걸이도 예전에는 그랬을지 모른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침 산책을 하기 전에 반드시 10분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 스트레칭을 한 다음에 하는 산책과 하지 않고 곧바로 시작하는 산책은 퀄리티가 완전히 다르다. 요즘의 내 몸을 보면 미시간에서 몰았던 내 첫 차가 생각난다. 10년도 더 된 중고차였던 내 차는 특히 날씨가 추운 아침에는 움직이기 전에 반드시 시동을 켠 채로 워밍업을 해주어야 했다. 엔진을 충분히 데우지 않고 그냥 움직이면 가다가 꺼지기 일쑤였다. 요즘 자동차는 카뷰레터를 쓰지 않기 때문에 예열할 필요가 없다.
충분히 스트레칭하고 산책을 시작한 다음에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개와 함께 걸으면서 사람은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경우를 많이 본다. 내게는 아직은 허락되지 않는 사치다. 지금은 앞만 본다. 내가 큰 나무의 뿌리 때문에 보도가 깨진 곳에 걸려서 넘어지지 않도록, 강아지가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거나 깨진 유리병 같은 것이 있으면 빨리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수시로 나를 보면서 체크하는 강아지와 눈을 마주치면서 “잘하고 있어!” 응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나는 걸으면서 종종 337 걸음을 한다. 337 박수처럼, 4발짝 걸으면서 숨을 들이쉰다. 폐 한가득 차오르는 맑은 공기를 상상한다. 그다음 4발짝 걸으면서 숨을 멈춘다. 그동안 온몸에 산소를 보내고 대신 노폐물을 모아오는 피를 상상한다. 마지막 8발짝 걸으면서 숨을 내쉰다. 모은 독소와 노폐물을 모두 짜내어 내보낸다고 상상한다.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다른 가족에게 부탁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산책은 내 몫이다. 오늘은 몸이 힘들어서 저녁 산책을 건너뛰고 싶었지만 나 대신 강아지를 데리고 나갈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강아지의 복지를 위해 꾹 참고 산책 나가서 일정대로 3마일 걷고 왔다. 시작이 힘들지만, 일단 시작하면 그런 대로 하게 된다. 오늘은 특별히 힘겹게 시작했지만, 특별히 가뿐한 마음으로 끝냈다. 산책 중 힐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산책하면 사람과 자주 마주친다. 사람만큼 개도 자주 마주친다. 개를 보면 개 주인의 성격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우리 강아지를 보고 내게 인사해도 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고, 무작정 손을 내밀어 강아지를 쓰다듬으려고 드는 사람들도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자마자 손을 내밀고 다가오면 강아지는 인사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화들짝 놀라면서 피하기도 한다. 그런 주인과 함께 가던 개 역시 우리 집 강아지에게 덤벼들려고 목줄을 잡아당긴다. 내게 강아지와 인사해도 되냐고 물어보는 사람과 함께 있던 개는 얌전히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딸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을 보면 부모의 성격을 그대로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반려견도 그런 것 같다.
오늘은 산책하는 중에 아마존 배달 트럭에서 내리는 사람과 마주쳤다. 저녁 식사 시간인데 일을 하는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강아지가 폐를 끼칠까 봐 강아지 목줄을 당겨서 내 옆에 바짝 붙어서 걷게 했다. 강아지는 내 마음을 그대로 읽고 살랑살랑 걸었다.
그런데 아마존 배달원이 굳은 얼굴로 내게 다가온다. 나는 살짝 긴장했다. 강아지를 내 옆에 앉혔다. 굳은 얼굴로 내게 다가온 아마존 배달원이 말을 건다.
“실례지만… 강아지를 쓰다듬어 볼 수 있을까요?”
앉아 있던 강아지에게 “가서 인사해!” 명령어가 떨어지자,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면서 그의 무릎에 얼굴을 살짝 대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강아지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강아지는 목덜미에 부드러운 흰털과 갈색털이 북슬북슬하다. 바닐라 초콜릿 아이스크림같다고 누군가 그랬다. 강아지와 인사를 나눈 사람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굳은 얼굴은 단지 피곤한 얼굴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말했다.
“오늘 참 길고 힘들었는데 강아지와 만나서 다 풀렸어요. 감사합니다.”
아, 나는 보기만 해도, 만지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영물을 맡고 있다. 강아지는 존재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행복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잔뜩 굳어져 있던 얼굴에 번지는 미소는 오히려 나에게 힐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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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UC 리버사이드 교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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