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가슴 벅찬 감동이, 때론 말 못할 슬픔과 절망, 고단함이 우리의 삶에는 있다. 특히 낯설고 물 선 이국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에게는 결이 다른 스토리들이 저마다의 가슴 속에 내장돼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속, 이제는 잔잔한 강물처럼 침잠됐을 워싱턴 지역 한인들의 초기 이민생활의 애환과 남다른 사연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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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손을 잡고 낯선 미국땅에 이민을 온 지 이제 몇 달이 지나면 40년에 가까워 오니, 나도 미국 이민 원조세대는 아니더라도 ‘준 원조’ 쯤은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나온 40년 가까운 시간들을 돌아볼 때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진한 색으로 가슴 속에 남아 떠오르는 분이 지금은 없어진 워싱턴 한인 YMCA의 총무이셨던 고 정준영 선생님이시다.
아마도 197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을 워싱턴 지역에서 지낸 분들이라면 기억할지 모르지만, 한인 YMCA는 정준영 선생님이 이 지역 한인 청소년들을 위해 거의 혼자 힘으로 설립하고 운영한 단체이다. 버지니아 알링턴 킹스트릿 한 모퉁이에 위치한 미국 교회 건물 내 허름한 사무실 몇 칸을 빌려 회관으로 사용하던 YMCA에는 늘 이 지역 한인사회의 어르신들과 청년·청소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YMCA에 대한 기억들 속의 중심에는 항상 정준영 선생님이 계셨다.
감수성이 한참 예민하던 고등학교 2학년 나이에 미국에 이민 와 극심하게 혼란스러운 사춘기 시절을 겪던 내게도 YMCA를 통한 정준영 선생님과의 만남은 내 삶의 방향을 통째로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
대학 시절 자원봉사로 시작된 정선생님과의 인연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내가 학교를 휴학하는 동안 거의 1년 가까운 시간, YMCA의 직원으로 근무를 하면서 이어졌는데, 지금까지도 그때 가까이 뵈었던 선생님의 모습이 내가 가야할 삶에 방향을 제시해 준 소중한 지표가 되어 주었다고 믿는다.
정 선생님은 평소에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괴팍하다고까지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무뚝뚝하고 말씀이 없으신 분이셨지만 힘들고 없는 사람들,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 사회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신 분이셨다. 특히 소위 문제아로 낙인 찍혀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청소년들을 보이는 문제로만 판단하지 않고, 그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들을 이해하고 감싸주려고 하셨던 모습은 내가 청소년 상담가로서 살아가며 닮아보려고 아직까지도 애쓰고 있는 모습 중의 하나다.
어느 덧 40년이 가까워 오는 나의 이민 생활을 돌아볼 때, 청소년 시절 내가 한인 YMCA와 정 총무님을 만난 것은 내 삶 속에서 아마도 가장 소중하고 귀한 축복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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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진 / 교육상담학 박사,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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