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미국에 왔을때 영어를 몰랐던 탓으로 나는 LA한인타운에서 살았다. 그후 팍 라브레아에서 살다가 할리웃으로 이사를 갔으며, 지금은 고교생 두아들의 학교 때문에 LA인근에서 살고 있다.
LA한인타운에서 만난 흑인 젊은 거지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밤새도록 깡통과 빈병을 수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컴퓨터 세일즈맨과 자동차세일즈맨을 했으나 여러번 해고를 당하자 더 이상 일자리를 가질수 없게 되어 결국 거리의 사람이 된 것이다. 그는 내게 “항상 배가 고프다”라고 슬프게 토로했었다.
두번째 팍 라브레아에서 만난 친구는 시카고에 부모형제가 있다고 했으며 그는 비록 거지이나 오히려 베푸는 입장이었다. 아침마다 인근 공원에서 클래식음악을 아침 운동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사했기에 우리는 그의 친구가 된 것이다.
그때 나는 한국 거지와 미국 거지의 큰 차이점을 발견했었다. “제일 필요한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샤워”라며 3년동안 한번도 샤워를 못했다고 말했다. 또 “제일 상처가 되는것이 무었이냐”고 물었더니, 주로 젊은 사람들이 “여기서 꺼져”라고 고함칠 때 라고말했다.
세번째 할리웃으로 이사를 간후 어느날 아침, 모아둔 빈 깡통을 주기 위해서 개 한마리와 함께 마켓 카트를 끌고가는 백인 50대 거지를 불 렀다.
그는 빈 깡통은 안중에도 없고 막무가내로 넋두리를 쏟아내었다. 시간이 지나가며 나는 두통을 느꼈지만 그만하라고 말을 하지못했다. 그러자 실컷 다 말을 한뒤 그가 한 말은 “내가 거지가 된 후 내말을 들어준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이 “아하! 거지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보다도 이야기를 같이 나눌 친구로구나”였다.
네번째는 지금 내가 다니는 동네 성당의 겸손하고 가슴이 따뜻하며 진실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두 아들이 다니던 가톨릭 중학교의 성당이라 계속 나가는데, 그곳에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미국가수 영화배우 및 백만장자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그 성당 신부님은 희색이 만연하면서 마치 오래전 자기 형제를 만난듯 아주 반가운 악수를 거지에게 청했다. 냄새가 온 성당내를 진동시키는 거지이건만, 누구하나 찌푸리거나 나가달라고 하지않고 다같이 한 형제로서 똑같은 인간으로서 미사에 참례했다.
지금도 매주일 그 성당에선 거지형제 거지자매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있다.
내가 만난 여럿의 거지들 중에서 단 한명 백인청년이 마약으로 크레딧카드 빚을 내어 쓰다가 거지가 되었다. 대부분의 거지들은 해고를 여러번 당했다가 결국 취직을 포기한 사람들이었거나, 아니면 벙을 얻어 거지가 된 이들이었다. 또한 많은 홈리스들은 영어로 말은 하지만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문맹인지라 취직을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편견에 차 있을 때가 많다. 우리가 할 일은 거리의 사람들을 비난하고 상처주고 무시할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이해해주고 도와주는 것이다.
서충임/베벌리 힐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