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국 대대적 도살작전 돌입, 주민들 적극참여 호소... “배회하는 개가 눈에 보이면 무조건 죽여 없애라”
▶ 독침·독극물주사로 도살 ‘너무 잔인’ 동물협회 비난
가장 인기 관광지인 쿠타 비치에서 배회하는 야생견. 최근 10세 호주 소녀 관광객이 바닷가에서 개에 물린 후 유기견 도살작전이 발표되면서‘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발리 섬에서 거리를 배회하는 유기견들을 그물망으로 포획하고 있다. 광견병 백신접종을 맞힌 후 표시를 하여 풀어주기도 하지만 그 숫자가 너무 많아 집단 도살시키기도 한다.
[해변 야생견에 호주 소녀 관광객 물린 후]
인도네시아의 휴양지 발리 섬, 쿠타 빌리지에서 개를 둘러 싼 논쟁이 시작된 것은 몇 주 전 호주 관광객인 10세 소녀가 개에게 다리를 물린 후부터였다. 바닷가 해먹 아래서 갑자기 튀어나와 소녀를 문 크림빛깔 작은 개는 ‘쉐일라’라고 불리는 주인 없는 야생견이었다.
발리에서 가장 인기 관광 지역인 쿠바 비치는 서핑과 차가운 맥주,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지저분한 모습의 바닷가 개들로도 유명하다. 이 바닷가 개들은 관광 명물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늘 있어왔고 해를 끼치지도 않았다, 말썽을 안 부릴 때는.
그러나 지난 1월27일 쉐일라가 소녀를 문 이후 일련의 사태가 전개되면서 ‘지상의 천국’이라는 휴양지는 다시 한 번 개떼들과 당국의 가혹한 단속 작전을 둘러싼 열띤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더구나 관광 피크 시즌은 몇 달밖에 안 남았다.
그날 바닷가 사건엔 목격자들이 많았다. 그들에 의하면 소녀가 물린 후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달려온 쿠타 빌리지 시큐리티 요원들은 자신도 놀라 파도를 향해 도망가려는 작은 개를 둘러싸고 곤봉과 패들로 마구 구타하기 시작했다는 것. “개의 머리를 계속 때려 쉐일라가 익사하는 줄 알았다. 또 한 요원은 벽돌로 내리치기도 했다”고 인도에서 온 한 관광객은 말했다.
경악한 관광객들이 말을 잃고 있는 동안 한 서핑 강사가 쉐일라를 ‘구출’하여 데려갔고 소녀는 근처 병원으로 실려 갔다. 가까스로 피신한 쉐일라는 광견병 백신을 접종받은 개였고 소녀는 무사했다.
그러나 다음날 늘 대여섯 마리씩 돌아다니던 개들은 사라져 버렸다. 쿠타 비치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밤사이 정부가 개들을 모조리 잡아 죽여 버렸다고 전했다.
“그 사건이 있은 후부터는 쿠바 비치에선 단 한 마리의 개도 못 보았다”는 한 서핑 강사 데디 수헤르만(35)은 자신도 쉐일라 구타를 직접 목격했다면서 “이곳 사람들이 정말 분개했다”고 말했다.
이틀 후 망쿠 파스티카 발리 주지사는 유기견이 무려 50만 마리에 달한다면서 전 주민들에게 정부의 유기견 도살작전에 적극 협력해 줄 것을 호소했다. “여러분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배회하는 개가 눈에 보이면 무조건 죽이십시오. 없애버리세요. 개들이 병을 전염시키며 돌아다니게 하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 사람들을 두렵게 합니다”
발리 정부는 유기견들에게 백신 접종을 해주고 개에 물린 주민들을 무료로 치료해주고 있지만 이젠 백신을 구입할 자금도 바닥이 나고 있다고 주지사는 말했다.
인구 400만명의 발리 섬에서 지난 2010년부터 2012년 사이 개에 물린 사람은 월평균 4,000여명에 달했다고 유엔의 한 관계부처는 전한다. 광견병에 걸린 개들은 극소수이지만 사람을 문 유기견의 감염여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린 후 즉각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치사율은 상당히 높다.
발리에 광견병 사망자가 발생했던 2008년 처음으로 주민들에게 유기견 도살을 촉구했던 주지사는 지난 7월에도 백신 비용이 너무 들어간다면서 도살 촉구령을 내린 바 있다. 당시 주지사는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들에 대해 “잡아서 쉘터에 가둘 필요도 없다. 그대로 없애버려야 한다”면서 야생견이 아닌데도 잡혀죽을 경우 배회하도록 둔 개주인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12월과 1월 동물통제국 요원에 의해 120여 마리가 도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사용하는 가장 흔한 도살 방법은 독침과 독극물 주사인데 끔찍한 도살장면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려져 동물보호협회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너무나 잔인한 방법으로 마치 고문과 같다”라고 발리동물보호협회의 설립자인 재니스 지라디는 지적했다. 발리에서 30여년 동안 거주해온 미국인인 지라디는 정부의 도살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해변을 돌아다니는 개들은 대부분 백신접종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개목걸이를 차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종교적 요소도 ‘개 논쟁’에 가세했다. 발리 경제의 80%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의 측면에서 보면 “관광객이 개에 물렸다” “광견병 주의” 같은 보도는 ‘트로피컬 아일랜드 파라다이스’라는 발리의 이미지를 손상 시킬 수 있다.
쿠타빌리지의 책임자인 웨이안 수아르사는 “많은 사람들이 유기견 도살 작전을 혐오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개들이 관광객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고 관광업은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개는 역사적으로 힌두계인 발리 섬의 문화에 중요한 한 부분이라면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다행히 광견병 발병은 줄어들고 있다. 2008년부터 2014년 사이 200만 마리의 개에게 백신접종을 한 결과다. 2010년 421마리의 개가 광견병에 걸린 것으로 확인되고 이로 인해 84명 주민이 사망한데 비해 작년에는 개 발병건수가 132 마리로 줄어들었고 사망한 환자도 없었다.
호주소녀의 달리를 물었다가 흠씬 두드려 맞은 ‘쉐일라’는 현재 한 로컬 주민 가족의 보호를 받으며 숨어있는 상태다. 동물보호협회는 백신접종도 이미 받은 쉐일라는 도살 대상이 아니라면서 “다시 바닷가에 나와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