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후 홍콩의 최북단 지하철역인 록마차우역을 찾았다. 지상역사에서 북쪽을 쳐다보면 고층빌딩이 즐비한 중국 광둥성 선전이다.
조그만 수로를 건너 선전에서 넘어오는 대형화물차의 행렬에 끝이 없다. 두 정거장 앞 판링역에서 지하철에 올라탔던 초ㆍ중학생들은 바로 연결돼 있는 선전의 최남단역인 푸티엔역으로 몰려갔다. 홍콩에서 태어난 뒤 일자리와 낮은 생활비를 좇아간 부모를 따라 선전에서 살고 있는 학생들이다.
중국과 홍콩은 이미 한 몸인 듯했다. 홍콩시내 어딜 가나 지역 방언인 광둥어와 함께 대륙의 표준말인 푸통어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공공시설은 물론 웬만한 쇼핑센터에서도 광둥어→푸통어→영어 순으로 설명이 나온다. 홍콩섬 최대 번화가인 센트럴역에서 만난 한 직장인은 농담조로 “몇 년 안에 푸통어→영어→광둥어로 순서가 바뀔 것”이라며 웃었다. 실제로 홍콩에선 중국 본토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음을 금방 실감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의 상황은 좀처럼 짐작하기 어렵다.
리모델링을 통해 수많은 명품점이 들어선 홍콩도심 침사추이에선 중국인 관광객들이 그야말로 왕이다. 허름한 차림새와 달리 가방 한가득 현금다발을 들고 와 명품을 싹쓸이한다는 얘기는 그냥 헛소문이 아니었다. 지난달 26일 오후 영화 ‘중경삼림’의 도입부에 나오는 청킹맨션 인근의 대형쇼핑몰 1층 매장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해당 매장 직원은 “60대 부부가 자그마치 500만홍콩달러어치를 한 번에 구매해갔다”고 말했다.
사실 ‘차이나 머니’의 위력은 다른 개발도상국에서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한 이곳 홍콩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다. 근래 홍콩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이면에 중국 갑부들의 사재기가 있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홍콩의 대중국 무역의존도는 이미 50%를 넘어섰고, 홍콩 증시 투자액의 26.5%가 본토 자본이다. 1997년 중국 본토의 18.6%에 달했던 홍콩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지난해엔 2.6%에 불과했다. 전반적인 경제 규모와 함께 홍콩의 자존심이랄 수 있는 무역ㆍ금융분야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수준으로 커진 것이다.
최근 홍콩에선 지난 20년간 본토 남성과 결혼하는 홍콩 여성이 무려 13.5배나 늘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홍콩을 찾는 관광객 4명 중 3명은 본토인이어서 양측 관계가 삐걱대기라도 하면 ‘관광 홍콩’은 유지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주권 반환 후 홍콩으로 이주해온 중국인은 어림잡아 150만명에 달한다. 홍콩의 일상에서 중국 색채가 짙어지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 지 오래다.
<홍콩=양정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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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전에서 싼값에 물건을 구입한 홍콩의 보따리상들이 지난달 289일 몽콕야시장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피곤한 듯 졸고 있다. <홍콩=양정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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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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