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가(長恨歌), 비파행(琵琶行) 등 3,000편도 넘는 작품을 남긴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중국 중북부 산시성과 허난성의 경계에 있는 그랜드캐년 같은 계곡의 태항산(太行山)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태항산 오르는 일이 아무리 험해도 인생길에 비하면 여반장(如反掌,손바닥 뒤집는 일) 이다.”
또 한 번의 12월이 간다. 돌아보니 지난 1년도 까마득하다.
다른 때보다 질게 밥을 지었다. 밥을 조금 푸고, 기름 한 방울 넣고, 고추장 한 숟갈을 넣어 비볐다. 그리고 그 고추장 비빔밥을 남김없이 먹었다. 비몽사몽을 헤매던 열흘 동안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참을 수 없는 통증과 고열에 시달렸다.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앓는 독감이다.
삼십 년 전, 뉴욕에 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 그 때도 예의 증세에 시달리면서 모임에 나갔었다. 설렁탕 국물조차 마시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밤 11시 넘어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정신과 의사인 S씨였다.
“오늘 낮에 보니 저승길 가겠습디다. 누워있지 말고 일어나세요. 그리고 밥을 지으세요. 뜨거운 밥에 참기름 한 방울 넣고 고추장 한 숟갈 넣고 비벼 드세요.” “고추장 먹으면 위장에 구멍 나는데......?”
“위장에 구멍 나는 것은 고치면 되요. 저승길 가기 싫으면 지금 시키는 대로 하세요.” ‘탁,’ 무례(?)한 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슨 주문에 이끌리듯 누워만 있던 내가 일어나 시키는 대로 밥을 짓고, 참기름 한 방울 넣고, 고추장 한 숟갈 넣고, 밥을 비벼먹었다. 그리고 여태껏 해마다 연례행사 같은 독감에 시달리면서 고추장비빔밥으로 정신을 차리곤 한다.
일찍 건강을 잃었었다. 건강을 되찾을 것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나는 지금 건강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런 내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나를 병원마다 끌고 다니던 수필가 김영숙, 시조시인 홍승희, 그림을 잘 그리는 황연숙, 그리고 서울에 가면 내가 사용할 전화와 남의 일을 도와주기 위해서 태어난 것 같은 공윤희. 아무리 제 일이 바빠도 남의 일을 먼저 해 주어야 마음 편한 도자기의 장인 박진숙, 제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으면서 “어지럽거든 내게 오세요. 고기 사 드릴게요.” 라는 시 쓰다가 소설 쓰다가 명상가가 된 조해인, 동아대상, KBS 대상 다 탔어도, 쪽방에서 난민처럼 살면서도, 누가 넉넉한 봉투라도 내밀면 ‘크다’고 돌려주고 마는 사진작가 조문호, 청청하고 냉정하고 분명한 기품이 있는 가문비나무 같은 글 잘 쓰는 소설가 배평모, 누구나 들어오셔도 좋고, 그냥 가셔도 좋다는 양평의 카페 ‘카슈가르’의 주인 이점숙, 몇 백억의 빌딩을 잃고서도 내 비행기 값을 보태야 마음편한 김명성, 그들로 해서 12월의 상실감을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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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자/펜클럽 미동부지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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