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제이 (버지니아 제일침례교회 담임목사, 메트로폴리탄 가족 연구소장 심리학박사)
때로는 가슴 벅찬 감동이, 때론 말 못할 슬픔과 절망, 고단함이 우리의 삶에는 있다. 특히 낯설고 물 선 이국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 한인들에게는 결이 다른 스토리들이 저마다의 가슴 속에 내장돼 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속, 이제는 잔잔한 강물처럼 침잠됐을 워싱턴 지역 한인들의 초기 이민생활의 애환과 남다른 사연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한국을 떠날 때가 1982년 8월9일. 미국행 첫 비행기에서부터 부닥친 언어의 곤욕스러웠던 경험은 지금도 생각하면 낯이 붉어진다.
영문학을 공부하고 영어만큼은 자신이 있다 하는 나에게 던져진 첫번째 질문 “무엇을 마시겠어요?”라는 승무원의 질문이었다. 그까짓 정도야. 자신있게 “커피!” 그런데 왠 일인가, “죄송한데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아니 어떻게 커피를 못알아 들어 생각하면서 이번에는 혀를 더 안으로 당기면서 “쿼~피!” 그러자 다시한번 “죄송해요 뭐라고 말씀 하셨어요?” 순간 당황스러웠던 감정은 38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옆 좌석에 앉은 흑인 소년이 “I think he is saying coffee” 말을 하자 “Oh!! coffee!” 하며 한 번에 알아 듣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영어 발음을 잘하려고 혀를 너무 굴려서 만들어낸 실수였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날 그 경험은 나로서는 평생을 잊지 못할 수치였지만 나의 자존심을 자극한 에피소드가 또 하나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어디서든지 일하면 학비도 벌어 공부할 수 있다고 들었던 터이라 부모님께 당당히 도움을 거절하고 혼자 공부하겠다고 미국에 왔는데 웬걸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미국에 도착한 다음날 길에서 손을 흔들어 자동차를 얻어 타고 소셜 시큐리티 번호도 신청하고 학교 근처를 걸어 다니면서 혹시 일자리가 있는지 묻기도 했다.
긴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Hardee’s 햄버거에 취직이 된 것이다. 미국에 도착한지 1주일 만에 계산대 앞에서 주문받고 돈 계산을 하는 캐시어가 된 것이다.
첫날 계산대 앞에 서있는 나에게 한 손님이 다가와서 “미역 2개!” 실례합니다. 뭐라고 하셨어요? 다시 물었다. 무엇을 원하시나요? “미역 2개” 아니 왜 햄버거집에 와서 미역을 찾는거야? 한 번을 더 물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매니저에게 가서 손님이 미역을 찾는데 미역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나를 아래위로 쳐다보던 매니저가 카운터 뒤에 있는 작은 냉장고에서 우유 2개를 꺼내는 것이었다. 아, 밀크(Milk)를 말하는 것이었구나. 그런데 왜 미역이라고 하는 거야? Two Milk! 그날 나는 계산대에서 밀려나 뒤에서 부엌청소, 햄버거 굽는 시다가 되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의 영어에 대한 나의 각오는 필사적이었다. 이래서는 될 수 없다 라는 각오로 공부하고 일하면서 불과 2시간 잠을 자면서도 TV를 틀어놓고 잠을 잤다 그 이유는 잠을 자는 중에도 무의식중에 영어가 들어와 영어를 생활화하기 위한 나만의 공부 비결이었다.
그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3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더벅머리 청년이 이제는 목회자가 되어 전세계를 다니며 영어로 설교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