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를 얻은들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라”
몇주 전 나는 귀에 이물질이 들어가 염증을 일으켜 일주일 정도를 한쪽 귀가 잘 안들려 불편을 겪으며 이대로 고칠 수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걱정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병원에서 치료받고 곧 회복되었지만 안 들리던 귀가 확 뚫린 그 시원함을 생각하며 값없이 누려온 건강, 그 너무나도 평범한 것들에 대해 나는 과연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왔는가 생각하니 부끄러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히 생각하는 것들, 자유롭게 숨쉴수 있고, 손가락 열개와 두팔과 두다리가 건강하여 남의 도움없이 먹고 마실 수 있고, 걸어서 화장실을 갈수도 있고, 목욕을 할수 있고, 가려운데를 긁을 수 있다는 것, 두발이 있어 멋진 구두를 신을 수 있고, 두눈과 귀와 두 팔이 성해 사랑하는 이의 모습과 미소를 볼 수 있고 “여보 사랑해”라는 말을 해주고 들을 수 있으며, 상대를 안아줄 수 있다는것에 우리는 감사해본 일이 있는가?
이런 것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그들의 고통을 헤아려본 일이 없었으며 있었다 한들 직접 겪어보지 못한 추측이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나를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손가락 한개만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컴퓨터를 배워 병든아버지와 할머니를 도울 수 있을텐데”라며 절규하는 소년이 우리 이웃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았는가.
내 자식이 정상적인 모습으로 태어났기에 부모가 하루종일 붙어있지 않아도 되고, 시집 장가를 갈 수 있다는것, “꼴등이라도 좋으니 남들처럼 일반 학교를 보내 봤으면” 하는 장애자 부모의 심정을 상상해 봤는가?
어찌 공부 못한다고 속상해 할수있으랴. 장애자가 가족 중에 없다는 것에 감사해본 적이 있는가.
아내가 있고 남편이 있어 서로 의지할 수 있고 돈은 잘 못벌어도 아이들이 ‘아빠’하고 실컷 부를 수 있는 아버지가 있어 결손가정 소리 듣지 않는데 감사해본 적이 있는가. 건강한 아내나 남편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이혼하고, 혹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후라야 아는 우리들이다.
병든 가족, 또는 장애자 남편의 치료비를 벌기위해 그들이 잠든 후에야 일을 하는 여인들을 생각해본다면 직장을 잃었다고, 사업에 실패했다고 어찌 불평할 수 있을까.
몸만 성하면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희망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겹도록 일할 수 있는게 축복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잃고난 뒤에야 소중함을 느끼는 어리석은 존재인 우리들. 이렇듯 감사할 일이 너무도 많은데 감사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며 만족의 기준은 무엇인가를 되묻다 보면 상대적인 비교하는 삶을 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감사의 계절에 우리 모두 눈을 감고 내가 받은 복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생각해보자. 감사의 잔이 넘치고 넘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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