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 전 “엡스타인 음모론 파헤치겠다” 공약
▶ 본디 연방 법무장관 “사실 아니다” 발표에 마가 지지층 역대급 반발… 내부 분열 조짐

도널드 트럼프(왼쪽) 대통령과 제프리 엡스타인.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견고하게 지지하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이 와해되고 있다. 지난 2019년 숨진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제기됐던 음모론은 사실이 아니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당시 “당선되면 엡스타인 사건부터 파헤치겠다”며 마가 세력을 결집시켰는데, 오히려 대통령이 된 뒤 음모론을 부정하면서 발목이 잡히게 됐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14일 “엡스타인 음모론 때문에 마가 세력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크게 분열하고 있다”고 전했다. 엡스타인은 2019년 미성년자 성착취 혐의로 수감 중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인물이다.
그의 사후 미국에선 엡스타인 음모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엡스타인이 성접대를 제공한 고위 정치인, 기업인들의 명단 같은 일명 ‘엡스타인 리스트’를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성범죄가 드러날까 염려한 리스트 속 거물들이 엡스타인을 살해했다는 게 골자다. 특히 마가는 ‘딥스테이트’(막후 실세 관료 집단)가 엡스타인 죽음의 배후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난주 연방 법무부는 이 같은 음모론은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엡스타인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없으며, 엡스타인은 살해된 게 아니라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고 공식화한 것이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12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엡스타인에게 허비하지 말자”고 지지층에 당부했다. 그러면서 “우리 마가는 한 팀”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마가는 법무부의 발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번 사건을 조사한 팸 본디 법무장관을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트럼프의 진화 노력에도 마가 지지자들의 불만은 오히려 확산하는 모습이다. 마가 진영을 대표하는 핵심 인사들까지 나서서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이자 팟캐스트 ‘워룸’ 기자인 내털리 윈터스는 “사람들은 엡스타인 사건이 대놓고 묵살당한 것에 분노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보수 성향의 인플루언서 로라 루머는 “트루스소셜에 글 하나 올린다고 이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며 “스트라이샌드 효과(감추려 할수록 논란이 더 커지는 것)가 생기면서 트럼프가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리기 전보다 훨씬 더 사람들이 이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고 폴리티코에 말했다. 루머는 이어 “트럼프 행정부에 타격을 주지 않도록 백악관이 지지층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며 엡스타인 사건을 조사할 특별검사 임명을 촉구했다.
보수 평론가 터커 칼슨은 본디 법무장관을 정면 겨냥했다. 그는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법무부가 엡스타인의 성범죄 관련 정보를 그다지 많이 갖고 있지 않다고 믿게 됐다며 “본디 장관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대신 TV 뉴스에서 터무니없는 주장을 늘어놨고 그걸 입증하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본디 장관이 지난 2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엡스타인의 고객명단이 책상에 올라와 있다는 식으로 언급한 점을 꼬집은 발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며느리이자 지난 대선 캠페인에서 핵심 역할을 한 라라 트럼프 역시 한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백악관이 엡스타인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서 더욱 투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지층의 이 같은 극심한 반발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 측근의 발언을 인용,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 음모론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온라인 여론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 지지층의 불만이 얼마나 깊고 광범위한지 온전히 알지 못했던 것 같다고 보도했다.
법무부의 엡스타인 사건 조사 결과를 놓고 마가가 분노하는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전 지지세력 결집에 엡스타인 음모론을 적극 활용하며, 사실인 것처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이 딥스테이트에 의해 살해됐으며, 자신 역시 딥스테이트의 횡포로 각종 수사를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딥스테이트 처단’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선되면 엡스타인 리스트를 당장 공개하겠다고도 했다. 엡스타인 음모론은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을 낸 본디 법무장관과 캐시 파텔 연방수사국(FBI) 국장 역시도 공직을 맡기 전 엡스타인 음모론을 적극 지지했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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