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이 아버지와 상봉하는 장면에서 눈먼 소리꾼 송화의 한 맺힌 소리가 얼쑤~ 추임새와 북 장단에 고조된다. 끝내 눈물범벅 속에 한을 풀어내는 이 판소리 한마당은 20년전 개봉된 영화 <서편제>의 마지막 장면이다.
’문경새재는 왠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의 진도아리랑이 남도 들녘에 울려 퍼지는 영상은 또 하나의 소리 축제였다.
이 영화의 성공은 새도 노래한다기보다 운다고 표현하며 울음으로 기쁨을 회복하는 우리민족의 각별한 정서에 닿았기 때문이 아닐까. 판소리는 전문인이 아니면 부르기 어렵지만 아리랑은 누구라도 부를 수 있어 친근감이 든다. 일제강점기의 설움을 견디는 힘이 되었던 아리랑은 노동할 때면 해학 넘치는 가사로 신명을 더했다.
2012년 아리랑이 인류무형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될 때 공동체에서 세대를 넘어 재창조되고 다양한 형태로 이어진 점으로 호평받았다. 후렴을 반복하면서 얼마든지 가사변형이 가능하니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의 아리랑을 비롯해 정선아리랑 등 60여종 8,000여개가 될 정도다.
구전민요라 어원을 알기 힘든 아리랑은 경복궁 중건때 고향을 떠나는 부역꾼들이 ‘나는 님과 이별한다(我離娘)’는 뜻으로 불렀다거나 ‘아리따운 님’, ‘가슴이 아리고 쓰릴 만큼 사무치게 그리운 님’ 등 해석이 다양하다.
아리랑의 전승과 세계화에는 젊은 세대도 공감 가능한 문화코드가 필요하다. 현대적 감각의 역동성이 넘치는 이지수와 체코필하모닉의 아리랑 랩소디는 열린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또 인사동의 ‘This is Arirang’ 프로젝트 등 세계각지의 플래시몹 형태의 공연은 인터넷 영상만으로도 감동을 선사한다. 우리 입맛에 여전히 중요한 쌀처럼 아리랑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리랑고개와 함께 단장의 미아리고개나 울고 넘는 박달재 등 가요에 많이 나오는 고개는 역경을 넘는 우리의 생활미학이 아닐까. 저기 고개를 넘는 여인들이 있다. 기품 넘치던 생전 외할머니 모습에 이어 평생 노고와 시름을 노래로 달래는 우리엄마도 보인다.
십리 산길을 걸어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동요, 가곡, 민요에 이르는 노래를 메들리로 부르곤 했었다. 요즘도 나름의 삶의 고개를 넘으며 불러보다 아리랑의 선율에 닿으면 어느새 어깨춤이 난다. 얼씨구 좋다, 청천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속엔 희망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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