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면 흔히 부는 바람이 있다. 대선 막판을 뒤흔드는 바람, 바로 북풍이다. 이 바람은 늘 선거 막판 변수로 등장, 대선 판도를 완전 뒤바꾸곤 했다.
1997년 제15대 대한민국 대선 직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 관련자가 보수 진영에 도움을 주기 위해 북한 당국에 무력시위를 요청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북한이 안보 위협 상황을 만들면 안보 불안을 걱정하는 국민들이 뭉친다는 공식이 작용하던 때였다.
보수 색채의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을 위해 청와대 행정관과 그 측근들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박충 참사관을 만나 휴전선 인근에서 무력시위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쇼킹 뉴스였고, 이를 계기로 ‘총풍’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이른바 북풍 사건은 과거 안기부가 특정 후보를 떨어뜨릴 목적으로 대선판에 북한을 끌어 들이려 시도했던 정치공작이었던 것이다. 오익제 방북 사건과 총풍 사건 등이 북풍사건의 주요 줄거리였다. 이는 후에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고 싶었던 북한과 이를 역이용한 안기부의 의지가 결합된 사건으로 밝혀졌다.
몇년전 상영된 영화 '공작'은 1997년 대선 당시 대북공작원 흑금성의 실제 인물인 박채서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안기부가 북한에 1억 달러를 대가로 휴전선 도발을 요청했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 있었다. 결국 무력 시위를 사주한 일은 보수 진영에 대한 반감과 보수 후보의 대선 패배로 끝났다.
대선 때마다 거의 고정 메뉴가 된 북풍과 안보불안 이슈는 올해도 마찬가지일까.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얼마전 "과거 총풍사건이나 북풍에서 한 치도 나아진 게 없는 불치병"이라며 윤석열 후보의 선제타격 발언을 비난했다. 북한의 무력시위에 따른 대선 표심의 영향은 대체로 북한의 무력 도발이 안보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면서 결과는 보수당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북한은 남한의 대선 직전에 거의 미사일 발사를 포함한 다양한 무력 시위를 해 왔다. 2002년 대선 한 달 전에도 북한 경비정이 국방한계선(NLL)을 침범했다.
이번 대선을 코앞에 앞두고 또 며칠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 지난달에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한국 유권자들의 긴장감을 고조시킨 북한은 선거 전날쯤 혹 무력시위에 나서는 건 아닐까.
지난 1월 7차례에 걸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해 가뜩이나 안보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생기면서 대선 막판의 안보 불안 돌발 변수로 떠올랐다. 이에 민주당은 평화 리더십, 국민의 힘은 강한 국방력 강조로 안보 표심 공략이 가열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북풍정도로는 영향이 없을 것 같다.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막강한 외교 안보 이슈가 대선판을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가 "한국의 지원을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문재인 정부는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에 대한 지지 정도의 원론적인 언급만 하는 입장이다. 줄을 잘못 서면 망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재명 후보는 외교의 중요성을, 윤석열 후보는 확실한 억지력을 통한 평화라는 아주 조심스러운 입장만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석열 후보는 우크라이나 상황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며, 안보는 냉혹한 현실이고 종전선언만으로는 평화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게 우크라이나의 교훈이라고 강변한다. 북한이 일으킨 연평도 포격 사건 같은 북풍은 안보 위기를 불러와 보수 정권에 이득을 주었다. 하지만 올 대선은 웬만한 북풍 아니고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다. 한미동맹이냐 중국, 러시아 눈치 보기냐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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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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