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 흐르고 기억 퇴색해도 포기안한 유가족의 집념

텍사스 미인대회에서 우승했던 초등학교 교사 아이린 가르자의 초상화

83세의 전 가톨릭 신부 존 파이트
83세의 전 가톨릭 신부가 56년 전 젊은 여교사를 죽인 1급 살인사건 용의자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1960년 부활절 전날 밤 미모의 초등학교 교사 아이린 가르자(당시 25세)가 텍사스 주 맥알렌의 세이크리드 하트 가톨릭 처치에서 존 파이트 신부(당시 27세)에게 고해성사를 한 후 사라졌다. 그리고 닷새 후 인근 한 관개수로에서 그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파이트는 처음부터 유력한 용의자였으나 수십년이 지난 이번 주에서야 애리조나 주 스캇츠데일에서 체포되었다.
미와 지성을 겸비한 가르자는 짧은 생애에 수많은 ‘최초’를 남긴 일가의 자랑이었다. 텍사스와 멕시코 국경지대인 히달고 카운티의 백인 다수 하이스쿨에서 최초의 히스패닉 배턴걸로 지휘봉을 돌리며 밴드를 선도했고 가족 중 최초로 대학에 갔으며 최초로 홈커밍 퀸으로 등극했고 1958년엔 ‘미스 올 사우스 텍사스 스윗하트’ 미인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 가르자가 강간당하고 질식당해 죽은 시체로 수로에 버려진 채 발견된 것이다. 지난 2월9일 텍사스 레인저스(텍사스주 경찰)와 맥알렌 경찰은 사건 당시 교구의 방문 신부였던, 지금은 애리조나 주 스캇츠데일의 콘도미니엄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팔순의 파이트를 체포했다. 사건 직후부터 가르자 살해의 유일한 용의자였던 파이트는 워커에 노쇠한 몸을 의지한 채 애리조나 주 마리코파 카운티 수피리어 코트에 출두했다. 그는 갈라지고 지친 음성으로 항의했다 : “1960년에 일어난 사건인데, 도대체 이건 말이 안됩니다”담당 커미셔너 폴라 윌리엄스는 대답했다 : “이런 범죄엔 공소시효가 없습니다”히달고 카운티 사상 가장 기억할만한 미제사건으로 꼽히는 가르자 피살 케이스에서 ‘파이트 체포’라는 진전을 이룬 것은 가족과 수사팀의 인내와 끈기, 그리고 정치적 야망이 혼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사건 발생 후 파이트 신부에 대한 의심이 짙어지자 로만가톨릭교회는 그를 미시시피 주 작은 마을 에바의 수도원으로 보냈다가 다시 뉴멕시코의 더 작은 마을 헤메즈 스프링스에 위치한, 문제 있는 신부들을 수양시키는 수도원으로 보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기억이 퇴색하고 증인들도 늙거나 세상을 떠났지만 가르자의 가족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담당 수사관들도 계속 압력을 가했다.
2014년 히달고 카운티 검사장 선거에서 가르자 피살 사건은 빅 이슈로 부상했다. 현직 르네 게라 검사장이 2004년 이 사건을 대배심에 다시 제기했으나 기소에는 실패한 바 있는데 도전자 리카르도 로드리게즈가 사건의 재심을 공약하고 나선 것이다.
가르자의 사촌 중 하나는 로드리게즈 지지 집회에 참석했고 또 다른 사촌은 지역신문에 편지를 보내 “우리는 아이린 가르자를 위한 정의구현을 지켜볼 것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우려하는 우리는 사회 최상위층과 최하위층이 사법체제하에서 법의 평등한 보호를 받기 원한다. 난 게라 검사장이 이런 일에 관심을 가졌다고 믿지 않는다”면서 로드리게즈 지지를 호소했다.
그해 선거에서 현직을 누르고 검사장에 당선된 로드리게즈는 공약대로 가르자 사건의 재수사에 착수했다. 사건 당시 가르자가 사라졌을 때 경찰은 처음엔 젊고 예쁜 여자가 독실한 가톨릭 가족들의 간섭을 피해 연인과 도망한 것으로 추정했었다. 그러나 이틀 후 한 행인이 그녀의 하이힐 한 짝을 맥알렌의 길가에서 발견했고 그 다음날엔 그녀의 가방이 발견되었다. 다시 이틀 후엔 그녀의 시체가 수로에 떠올랐다. 물을 빼낸 수로에선 촛대를 비롯한 교회 물품들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가르자의 시체를 수로의 진흙바닥에 가라앉게 하기 위해 묶었던 것으로 보이는 긴 검은 끈의 한 쪽이 묶인 금속의 코닥 슬라이드 뷰어도 나왔다. 슬라이드 뷰어는 파이트의 것이었다. 젊은 신부 파이트는 그날 밤 가르자의 고해성사를 들었다는 것은 인정했으나 범행은 부인했다. 당시 교구의 담임신부였던 조셉 오브라이언은 수사관들에게 그날 밤 늦게 파이트와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파이트의 손에 새로 생긴 상처를 보았다고 말했었다.
파이트는 1970년대 신부직을 그만 두고 결혼했으며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이후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었고 오랫동안 천주교회가 운영하는 식품 배급소의 자원봉사자 훈련 등 교회 관련 일을 계속해 왔다.
그는 사건 당시에도, 56년이 지난 현재도 범행을 부인하고 있으나 그가 한동안 머물렀던 미시시피 주 에바의 수도원에서 카운슬링을 담당했던 데일 테체니 수도사의 이야기는 다르다. 현재는 수도사를 그만 둔 테체니에 의하면 당시 파이트는 자신이 텍사스에서 젊은 여성을 죽였다고 털어놓았다는 것. 그러나 테체니는 자신의 임무는 파이트가 교회를 떠난 후의 삶을 준비시키는 것이었으므로 그녀가 누구인지 등 더 이상 묻지 않았다고 했다.
파이트는 또 자신이 히달고에서 다른 여성에게 피해를 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고 테체니는 말했다. 다른 교구에서 발생한 그 일은 수사관들도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파이트가 교회 내에서 한 여성을 공격했던 범행을 인정, 구금 없이 500달러의 벌금으로 마무리된 사건이었다.
테체니가 파이트의 이야기를 당국에 알린 것은 2002년이었다. 당시 텍사스 레인저가 미해결 범죄 수사팀을 새로 발족시킨 후 이 사건도 재조사에 들어갔었는데 기소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4년 대배심에 이 사건의 재심을 신청한 게라 전 검사장은 수사관들이 강력한 증인으로 생각한 테체니와 오브라이언 신부를 증인으로 부르지 않았다. 오브라이언 신부는 2005년 사망했다.
지난 주 로드리게즈 신임 검사장의 재심 신청으로 열린 대배심은 파이트의 기소를 결정했다. 파이트는 텍사스로의 송환에 이의를 제기한 상태이며 윌리엄스 커미셔너는 현금 75만 달러를 보석금으로 책정했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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